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강요된 善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더 중요하죠

입력 : 2022.09.06 03:30

시계태엽 오렌지

1971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시계태엽 오렌지의 영화 포스터. /위키피디아
1971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시계태엽 오렌지의 영화 포스터. /위키피디아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거야. (…) 어떤 정부라도 버젓한 젊은이를 태엽 감는 기계로 만드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 그건 탄압을 자랑스레 여기는 정부나 하는 짓이야."

1962년 출간된 앤서니 버지스(1917~1993)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도덕의 의미를 묻는 20세기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에요.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1971년 영화로 만들면서 더욱 유명해졌죠.

열다섯 살 앨릭스는 밤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가 친구들과 온갖 비행을 저질러요. 앨릭스의 비행은 '10대의 반항' 수준이 아니었어요. 마약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향한 이유 없는 폭행, 강도, 심지어 살인까지. 앨릭스 일행의 악행은 끝을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 결국 앨릭스는 살인죄 등으로 14년형을 선고받아요. 하지만 앨릭스의 폭력성은 교도소에서도 제어되지 않았어요. 앨릭스가 수감된 방에 새로운 죄수 하나가 들어왔는데, 앨릭스는 동료들과 함께 그를 폭행합니다. 문제는 앨릭스의 마지막 발길질로 그 죄수가 죽었다는 점이에요.

이 사건 이후 앨릭스는 정부가 추진하는 한 실험에 자원하게 돼요. 실험에 참가하면 남은 형을 모두 감면해주기 때문이었어요. 이 실험은 '루도비코 요법'이라고 불렸는데, 세뇌 훈련으로 인간의 범죄적 속성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인위적인 실험이었어요.

그런데 앨릭스의 실험 참여를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교도소의 신부님이었죠. 그간 앨릭스는 신부님에게만큼은 고분고분했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어요. 신부님은 앨릭스가 루도비코 요법에 자원하자 이렇게 말해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강요된 선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죠.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일 수 없고, 다만 '태엽 달린 오렌지'처럼 수동적인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는 의미예요.

하지만 앨릭스는 결국 실험에 참여하고, 감옥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자기 의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어요. 세뇌를 당한 거지요. 앨릭스와 친구들에게서 보이는 폭력성이 그들만의 잘못이었을까요. 작품의 배경인 영국 런던은 온갖 범죄가 난무했고, 국가 권력은 이에 대응해 더 심한 억압과 폭력을 일삼았어요. 학교와 경찰·교도소 등 어디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곳이 없었고, 오로지 순응적 인간과 비순응적 인간을 격리하려고만 했어요. 앨릭스의 폭력성은 사실상 국가가 방치한 결과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작품은 국가 권력의 횡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우리 시대 고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