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소설이 자기 일처럼 느껴지게 될 때 허구 아닌 나의 인생으로 다가오죠
입력 : 2022.08.25 03:30
저도 소설은 어렵습니다만
"나는 이 책에서 누가 읽어도 재미있을 만한 소설을 '추천'하는 대신, 그간 소설을 읽으며 발견하고, 깨닫고, 느꼈던 과정에 대해 가감 없이 적어보려고 한다."
이 책을 쓴 한승혜 작가는 "훌륭한 소설 작품 수십 편을 추천하는 것도 독자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그보단 소설이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으로 스며드는지, 그렇게 스며든 생각의 씨앗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푸른 잎사귀를 키우며 커다란 나무가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마음속 나무가 우거지면 문학이 만들어 준 커다란 나무의 그늘 밑에서 우리가 어떤 위안을 받거나 쉬어갈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싶었다고 하네요.
혹시 "소설 따위를 읽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자 역시 소설이 시간 낭비이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낸 시절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박완서 작가의 장편소설 '도시의 흉년'을 집어 들었는데, 책장을 펼치고 마치 홀린 듯 사로잡혀 날이 저물도록 독서에 몰두했다고 해요.
"그날, 그야말로 전율에 가까운 감각을 느꼈다"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어요. 저자는 그날 이런 감각을 느꼈던 이유를 "그 책이 자신에게 딱 맞는, 온전한 나의 이야기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요. "자신에게 꼭 맞는 이야기를 마주하면 그때부터 소설은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 차원을 넘어선다. 소설이 곧 자신의 인생이 되고, 거꾸로 나 혼자서만 겪었다고 생각한 일을 소설의 창을 통해 객관의 시선으로 비춰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내게 꼭 맞는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인생에도 독서에도 '단축키'란 없는 법"이라고 대답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봐야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이를 찾을 수 있듯이, 소설을 읽어보고 겪어보면서 소설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고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 책에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로맹 가리의 '노르망디의 연' 등 모두 31편의 소설이 등장해요. 작가도, 주제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모두 다른 다양한 작품들이지요. 그러면서 저자는 소설의 내용을 자기 내면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데요. 예를 들어 암울한 시대를 재치 있게 풍자하고,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이라는 개인의 하루를 통해 시대의 낭만을 보여주는 에이모 토울스 작품 '모스크바의 신사'에는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불편함이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은 불편한 상황에 처했을 때 편리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맥락인데요. 저자는 소설 속 이 장면을 떠올리며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극복할 의지를 얻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