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영화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 음악에 영향 줬어요

입력 : 2022.08.22 03:30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9세 때 말러가 "조숙한 천재" 극찬
오페라 '죽음의 도시' 2막 아리아는
성악가 김기훈이 국제 콩쿠르서 불러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관현악 연주와 실내악 연주를 함께 선보이는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이 열렸습니다. 이 축제에서는 올해 멘델스존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작품이 다뤄졌어요. 사진은 이번 ‘클래식 레볼루션’ 지휘를 맡은 크리스토프 포펜(왼쪽) 예술감독. /롯데콘서트홀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관현악 연주와 실내악 연주를 함께 선보이는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이 열렸습니다. 이 축제에서는 올해 멘델스존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작품이 다뤄졌어요. 사진은 이번 ‘클래식 레볼루션’ 지휘를 맡은 크리스토프 포펜(왼쪽) 예술감독. /롯데콘서트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시작한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이 21일 막을 내렸습니다. 이 축제는 롯데콘서트홀에서 기획해 2년 전부터 매년 8월 열리고 있는데요, 관현악과 실내악 연주를 함께 선보여요. 첫해인 2020년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음악을 다뤘고, 지난해에는 요하네스 브람스와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주했어요.

올해는 멘델스존과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작곡가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의 곡이 다뤄졌는데요. 코른골트는 20세기 초·중반에 활약하며 뛰어난 천재성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가 어떤 음악가였고 어떤 작품 활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아볼게요.

아버지가 모차르트 이름인 '볼프강' 지어줘

코른골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르노(현재는 체코)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 혈통이었던 코른골트의 아버지는 당시 유명한 음악평론가였는데, 어린 아들이 음악가로 성공하길 바라며 모차르트의 이름인 '볼프강'을 붙여줬다고 하죠.

실제 코른골트는 모차르트와 비교될 정도로 매우 조숙한 천재였는데요. 7세에 작곡을 시작해 9세가 되던 해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로부터 "믿을 수 없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작품번호 1번인 피아노 3중주를 13세에 작곡했고, 대규모 관현악곡인 '신포니에타'(Sinfonietta)를 불과 15세에 만들었어요. 보통 신포니에타는 소규모 교향곡을 의미하지만 코른골트의 신포니에타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입니다.

코른골트는 18세 때부터 오페라 작곡도 시작했는데요. 1920년 23세의 나이로 만든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지금까지도 코른골트의 최고 걸작으로 불려요. 이 오페라는 함부르크와 쾰른에서 초연된 직후 큰 인기를 끌었지요. 그는 이후 1931년 빈 국립 음대의 교수로 임명되기도 합니다.

미국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받아

그러던 코른골트는 오스트리아의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권유로 할리우드로 자리를 옮겨 영화음악을 쓰기 시작합니다. 첫 영화음악 작품은 셰익스피어 희극을 영화로 만든 '한여름밤의 꿈'(1935)이었는데요. 이 분야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한 그는 이후 발표한 '앤서니 어드버스'(1936), '로빈 후드의 모험'(1938) 등 두 편의 영화음악으로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이 시기는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때였는데요. 이전까지 유럽과 미국을 오가던 코른골트는 미국에 정착해 1943년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는 20여 편의 영화음악을 만들었는데, 만드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으며 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음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아쉬움 하나가 남아있었어요. 바로 영화음악을 쓰느라 클래식과 같은 순수음악을 쓰지 못했던 건데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그와 함께 살다가 1945년 세상을 떠난 코른골트의 아버지도 이 점을 아쉬워했죠. 이에 코른골트는 1947년 영화음악 작곡을 그만둔 후 다시 순수음악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는 1949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새로운 순수음악 작품을 야심 차게 소개했는데요. 청중은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코른골트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영화음악 작곡가'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여러 새로운 작곡 기법을 시도하던 작곡가들에게 익숙해진 청중은 20세기 초 기법만을 고수하던 그의 작품을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느꼈지요.

1957년 코른골트는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면서 그의 작품은 빠르게 잊혔습니다. 그러다 1972년 그의 영화음악 '바다 매'(1940·Sea Hawk)를 영국의 영화음악 전문 오케스트라인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면서 코른골트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그가 만든 여러 영화음악이 재조명됐죠.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은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인기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도 자신이 '스타워즈'나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등을 만들 때 코른골트의 작품이 영감을 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 깊은 화성

코른골트의 음악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 풍부하고 깊은 화성으로 듣는 이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지난해 영국 BBC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인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우리나라의 성악가 김기훈이 아리아 부문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됐는데요. 김기훈은 이 콩쿠르 예선에서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2막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그리움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불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래를 듣던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었죠. 연주와 노래도 물론 훌륭했지만, 달콤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코른골트의 선율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클래식 레볼루션 축제에서는 코른골트의 초기 작품인 피아노 트리오 작품 1, 피아노 5중주 작품 15,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그의 대표작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35와 최후의 대작인 교향곡 작품 40 등이 소개돼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아직은 낯선 작곡가 코른골트가 한국에서 좀 더 친숙해진 계기가 됐기를 바랍니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 /위키피디아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 /위키피디아
코른골트는 1920년 23세의 나이로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만들었어요. 사진은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한 장면. /위키피디아
코른골트는 1920년 23세의 나이로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만들었어요. 사진은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한 장면. /위키피디아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