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3000년 전 람세스 5세 미라에서도 천연두 흔적 발견됐어요

입력 : 2022.07.06 03:30

천연두와 전염병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이 남아메리카 대륙 정복하며 확산돼
종두법은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했죠

천연두가 언제 처음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원전 12세기 이집트를 통치했던 람세스 5세 미라의 얼굴과 몸에서 천연두의 증상인 종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약 3000년 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돼요. 사진은 벨기에 출신 화가인 미힐 스위츠가 그린 유화 ‘고대도시의 전염병’. 전염병 창궐을 표현했어요. /위키피디아
천연두가 언제 처음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원전 12세기 이집트를 통치했던 람세스 5세 미라의 얼굴과 몸에서 천연두의 증상인 종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약 3000년 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돼요. 사진은 벨기에 출신 화가인 미힐 스위츠가 그린 유화 ‘고대도시의 전염병’. 전염병 창궐을 표현했어요. /위키피디아

주로 서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풍토병인 '원숭이두창'이 최근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요. 원숭이두창은 1958년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어요. 천연두(두창·痘瘡)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1970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확인됐고, 이후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 사례가 꾸준히 보고됐죠. 그러다 지난 5월부터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번처럼 짧은 기간에 50국 이상에서 원숭이두창 환자가 쏟아진 건 처음이라고 해요. 원숭이두창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천연두의 원인인 '두창바이러스(variola virus)'와 같은 과(科)에 속한대요. 그래서 천연두 백신을 맞으면 원숭이두창에 대해 85%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연두는 수 세기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했어요. 천연두는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감염병이죠. 하지만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2세, 청나라의 세 번째 황제 순치제 등 수많은 사람이 천연두로 사망했어요. 천연두, 홍역 등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역사 속 전염병에 대해 알아볼게요.

고대 역사 속 두창

천연두가 언제 처음 발생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하지만 기원전 12세기 이집트를 통치했던 람세스 5세 미라의 얼굴과 몸에서 천연두의 증상인 종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약 3000년 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연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무역로를 따라 아시아·유럽 등지로 퍼졌는데요. 바이러스 감염자의 30%는 사망에 이르렀어요. 살아남더라도 눈이 멀거나 깊은 흉터가 생기는 등 후유증이 남았죠.

천연두 확산으로 문명이 파괴된 경우도 있어요.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면서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됐어요. 잠복기가 열흘 이상이었는데, 한 마을에 병이 퍼지면 원주민들이 이웃 마을로 피신해서 그곳에 병균을 퍼뜨리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요. 이에 원주민 인구는 급속히 감소했고요. 지금의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세력을 떨쳤던 아스테카 제국은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에 도착한 지 2년 만에 몰락했는데요. 천연두의 전파가 결정적 요인이었어요. 아스테카 제국의 쿠이틀라우악 왕은 즉위한 지 몇 달 만에 천연두로 죽기도 했고요.

남아메리카가 유럽의 식민지였던 기간 원주민 사망자의 약 90%는 천연두·홍역 등 다른 대륙에서 온 각종 전염병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잉카제국의 우아나카팍 황제도 육로로 퍼진 천연두 때문에 죽어 잉카 제국의 멸망을 앞당겼죠.

천연두 바이러스를 무기로 사용하려고 한 사례도 있습니다. 1763년 영국이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있는 오대호(五大湖) 지방을 다스리는 것에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저항하면서 폰티액 전쟁이 발발했어요. 영국 장교들은 원주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 치료 병원에서 가져온 담요와 손수건 등을 원주민 대표에게 나눠줬어요. 이런 방식이 천연두 확산에 실제로 얼마만큼의 영향을 줬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천연두에 면역력이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죠. 천연두로 아메리카 주민 2000만명 이상이 숨지고, 1500년대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인구 1억명이 죽었다고 추산됩니다.

종두법의 개발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1749 ~1823)는 "낙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소의 두창)에 걸리고 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최초의 백신을 고안해 냅니다. 그는 1796년 우두 고름을 건강한 8세 소년의 팔에 삽입하고 6주 후 천연두 고름을 접종했어요. 그러자 이 소년은 약한 증상만 앓고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았어요. 제너가 바이러스를 이용해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죠.

이것이 바이러스를 사람 몸에 주입해 질병을 예방하는 우두 접종법(종두법)입니다. 제너는 이 천연두 예방법을 'Vaccination'이라고 불렀는데, 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바이러스를 사람 몸에 직접 주입시키는 이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제너는 수차례의 실험을 실시해 결과를 영국 왕립 학회에 보고했어요. 이후 프랑스에서 종두법을 받아들이면서 전 세계에 종두법이 널리 퍼졌어요.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의 왕립 학회는 이 공을 높게 평가해 그를 명예 회원으로 우대했습니다.

1967년에는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세계적인 예방접종 캠페인이 시작됐는데요. 세계보건기구는 그해 천연두 환자를 1000만~1500만명, 사망자를 200만명으로 추산했어요. 이후 10년 뒤인 1977년 소말리아 병원의 직원이 감염된 사례 이후 자연적으로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없다고 알려져 있어요. 감염자가 0명이 된 거지요.

어린아이들이 많이 걸린 홍역

홍역 역시 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전염병이었어요.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시작해 몸에 붉은 발진이 돋는데,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이 걸렸죠. 10세기 페르시아의 의사였던 무함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라지는 '천연두와 홍역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을 남겼는데요. 홍역을 "천연두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설명했어요. 천연두처럼 홍역도 아메리카 대륙에는 노출된 적이 없던 질병이어서 16세기 아메리카의 인구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1529년 쿠바에 홍역이 대유행했을 때, 천연두 창궐에도 살아남았던 원주민의 3분의 2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홍역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는 대략 2~3년마다 홍역이 유행했고 이로 인해 매년 약 260만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후 1963년 미국에서 홍역 백신이 개발됐고, 백신이 보급되며 발병률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돼요. 홍역은 백신 접종을 할 경우 97% 이상의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천연두 걸린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29세였던 1562년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맸어요. 다행히 병마에서 벗어났지만, 얼굴에는 수포 흉터가 남았지요. 그녀는 흉터를 가리기 위해 얼굴을 하얗게 화장했는데요. 화장품에 납 성분이 있어 말년에는 납중독으로 머리카락과 치아가 빠져 매우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의 방에 거울을 두는 것도 거부했대요.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왼쪽)는 우두접종법(종두법)을 개발했어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오른쪽). /위키피디아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왼쪽)는 우두접종법(종두법)을 개발했어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오른쪽). /위키피디아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