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龍이 지나다니는 통로까지 만들어… 행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담았죠

입력 : 2022.07.05 03:30

홍콩의 건축 양식

홍콩섬 남부에 있는 리펄스베이 맨션. 건물 가운데 용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만들었어요. /위키피디아
홍콩섬 남부에 있는 리펄스베이 맨션. 건물 가운데 용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만들었어요. /위키피디아
지난 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홍콩은 중국과 세계를 잇고,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국제적인 금융 도시로 꼽히는 곳이죠. 그래서 많은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사가 홍콩에 자리를 잡고 있고, 이 때문에 홍콩의 중심인 홍콩섬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마천루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홍콩의 건축에서는 풍수(風水)가 빠질 수 없습니다. 많은 건물이 풍수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어떤 건물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HSBC은행 사옥이 대표적입니다. HSBC는 홍콩과 상하이를 거점으로 성장해 현재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은행입니다. 1985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빌딩이었던 HSBC 홍콩사옥은 하이테크 디자인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지었는데요. 기업의 부탁을 받아 풍수사의 조언을 듣고 건물을 지었다고 해요.

이 건물 1층에 들어서면 아무런 설치물 없이 넓은 광장처럼 탁 트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좋은 기를 잘 통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해요. 건물 양옆으로는 사자상을 세웠는데요. 풍수에서 전해지는 "동풍(東風)을 맞으면 동상이 밤에 살아 움직인다"는 말 때문에 오른쪽 사자상은 입을 다문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오른쪽 사자상이 동쪽 방향을 향해 세워져 있었거든요.

인근에는 중국의 국유상업은행인 중국은행 홍콩사옥이 들어서 있습니다. 1989년 완공된 지상 70층의 이 건물은 당시 아시아 최고층(367.4m)으로 지어졌어요. 이 건물은 여러 방향으로 날카롭게 잘린 것 같은 외형이 특징인데요.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살기를 품은 칼"이라고 수군댔어요. 중국은행 홍콩사옥의 이런 외형을 보고 인근의 HSBC도 위협을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180m 높이의 건물 옥상에 대포 모양의 크레인 두 대를 설치했어요. "대포를 쏴서 칼의 살기에 대응한다"는 의미였죠.

풍수 건축의 백미는 바로 홍콩섬 남부에 있는 부촌인 리펄스베이 맨션입니다. 근처 산자락에 지은 맨션은 건물 중심부가 네모나게 뚫려 있어요. 구멍의 정체는 용이 지나다니는 통로입니다. 풍수에서 용은 산에 살다 가끔 물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데요. 용의 움직임을 막지 않으려고 건물에 큰 구멍을 내고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 거죠.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