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미술 돋보기] 수놓은 천 조각 캔버스에 붙여… 추상화처럼 표현했어요
입력 : 2022.06.27 03:30
수예(手藝)를 활용한 작품
- ▲ 작품1 - 명주 조각보자기, 조선 후기, 비단. /본태박물관
천 이어 붙여 만든 보자기가 작품으로
〈작품 1〉은 조선 시대 여성이 만든 보자기입니다. 옷을 만들고 남은 작은 천 조각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가 그것들을 엮어서 만든 조각보인데요. 색채 감각도, 솜씨도 좋은 여성이 만들었는지 이어 붙인 사각형의 천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색채 구성을 이루고 있지요. 이런 조각보를 만들 때는 처음부터 큰 구성을 생각해두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천을 붙여 넓혀가면서 그때그때 맞는 모양과 어울리는 색깔을 골랐습니다.
물건을 싸거나 덮어두는 보자기는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었어요. 크게 만들면 이불을 덮거나 싸는 이불보로 쓸 수도 있었고, 네 각의 모서리를 잘 묶으면 가방처럼 변하기도 했어요. 보자기에 싼 짐은 '봇짐'이라고 부른답니다.
궁중에서는 큰 천 하나에 수를 놓아 고급스러운 보자기로 삼기도 했지만, 알뜰한 서민들은 주로 조각을 이어 붙여 보자기를 만들었어요. 천도 아끼고 즐거운 공예(工藝) 활동도 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보자기의 전통을 작품에 응용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미술가가 있는데요. 김수자(65) 작가입니다. 〈작품 2〉는 바느질로 이어 붙인 색색의 천 조각 위에 물감을 덧대 그림이라는 느낌을 줬습니다. 김 작가는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다가 문득 천으로 미술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김 작가와 비슷한 나이의 한국 사람이라면 어머니와 딸이 함께 이불과 요를 꿰매는 모습은 아마 낯설지 않을 텐데요. 작가는 천 바느질을 통해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자신으로 이어지는 유대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미국의 바느질 전통 담긴 작품
미국에도 이와 비슷하게 천으로 작품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1976년도에 만들어진 〈작품 3〉은 조각마다 수를 놓고 가장자리에 뜨개질로 레이스를 짠 네모 모양의 작은 천을 캔버스 위에 커다랗게 이어붙인 것인데요. 이 작품을 만든 미국의 미술가 미리엄 샤피로는 1970년대 천 조각으로 콜라주(그림 위에 다른 재료들을 잘라 풀로 붙이는 방식) 작업을 하면서 천과 관련된 여성들의 경험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은 예술 작품으로 귀하게 우러러보면서 여성들의 수예는 장식적인 실용품에 불과할 뿐 별것 아니라고 여기기도 했는데요. 샤피로는 천 수예를 캔버스에 붙여 추상화처럼 제시해 그런 편견에 맞서고자 했습니다.
샤피로의 작품은 네모 모양의 천 조각을 붙인 이불을 떠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조각보의 전통이 있듯, 미국에는 이불에 바느질로 무늬를 새기거나 천 조각을 덧붙여 장식하는 퀼트(quilt) 이불의 전통이 있어요. 과거 퀼트 이불은 주로 여성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는데요.
친척이나 마을 여성들이 함께 퀼트 이불을 만들어서 졸업식이나 결혼식처럼 특별한 날을 맞이하는 여성에게 선물했다고 해요. 그렇게 선물로 받은 이불은 평생 간직하고 있다가 죽음을 눈앞에 뒀을 때 다시 꺼내 덮는다고 합니다. 옛 친구들의 바느질 손길이 담긴 이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할머니 이야기 담긴 공예 작품
〈작품 4〉는 아프리카계 미국 미술가 페이스 링골드가 퀼트와 회화를 결합하여 제작한 거예요. 더운 여름밤에 가족이 옥상에서 담요를 깔고 누워 별빛 아래 소풍을 즐기고 있네요. 링골드가 기억하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링골드는 작품 가운데에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림을 그려 넣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림 가장자리에 조각 천을 퀼트로 꿰매어 붙였습니다. 링골드의 4대조 할머니는 미국 남부 농장 주인을 위해 퀼트를 만들던 노예였다고 해요. 어머니가 그림에 덧대어준 퀼트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미래를 꿈꾸는 링골드가 어쩌면 평생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오래된 과거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여성 미술가들은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등을 천 바느질 작품에 담아냈어요. 또 이런 작품에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인 할머니, 나아가 그 위 세대의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개인의 작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답니다.
- ▲ 작품2 - 김수자, ‘무의미’(1989), 천 위에 실과 물감. /작가 소장
- ▲ 작품3 - 미리엄 샤피로, ‘연결’(1976), 캔버스 위에 천 콜라주. /위키아트
- ▲ 작품4 - 페이스 링골드, ‘옥상’(1988),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뉴욕구겐하임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