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튤립·오렌지 혁명… 색이나 꽃에서 이름 따왔죠

입력 : 2022.06.15 03:30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여당 측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오렌지 혁명’이 일어났어요. 사람들은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의 옷·두건·목도리 등을 착용하고 오렌지색 깃발을 들고 나왔어요. 사진은 왼쪽 손목에 오렌지색 리본을 맨 시민이 경찰 방패에 꽃을 꽂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여당 측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오렌지 혁명’이 일어났어요. 사람들은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의 옷·두건·목도리 등을 착용하고 오렌지색 깃발을 들고 나왔어요. 사진은 왼쪽 손목에 오렌지색 리본을 맨 시민이 경찰 방패에 꽃을 꽂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표트르 대제 탄생 350주년 기념식에서 "표트르 대제는 21년간 대북방 전쟁을 벌였고 러시아 것(영토)을 되찾아왔다"며 "영토를 되돌리고 (국가를) 강화하는 건 운명"이라고 했어요. 표트르 대제는 오스만 제국, 스웨덴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러시아 북부와 발트해 연안 지역을 병합한 인물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표트르 대제를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영토 확장 야욕을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날 율리야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옛 소련 시절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푸틴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티모셴코 전 총리는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오렌지 혁명'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야당 측 인물인데요. 오렌지 혁명은 독재 정권 등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추구한 무혈 혁명인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 중 하나입니다. 이 같은 혁명은 보통 각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나 색깔에서 이름을 따와요.

지난 1월 푸틴 대통령은 "색깔 혁명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2000년대 초 조지아·우크라이나·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 등에서 색깔 혁명이 일어나며 친(親)러 정권이 붕괴됐거든요. 주요 색깔 혁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아볼게요.

40여 년의 독재 정치에 맞선 혁명

색깔 혁명은 주로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중앙 유럽,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일어났지만, 그 시초는 1974년 4월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 혁명'입니다. 당시 포르투갈에서는 40여 년 동안 이어진 살라자르 정권의 독재 정치로 국민의 불만이 고조돼 있었어요. 살라자르 정권은 아프리카 식민지인 앙골라·모잠비크 등에서의 민족운동을 탄압해 국제적인 비난도 받고 있었죠.

1974년 4월 25일 자정이 되자 라디오에서 민중가요인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Grandola, Vila Morena)가 흘러나왔어요. 이 노래는 혁명을 개시하는 신호였어요. 포르투갈군의 젊은 장교들과 반체제 인사들은 독재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국 운동'(MFA)을 결성했었는데요. 노래가 시작되자 이들은 공항·방송국 등을 점령합니다.

당시 총리였던 카에타누는 거의 저항하지 않고 혁명군에 항복했어요. 그리고 혁명군을 이끌었던 스피놀라 장군에게 권력을 넘겼지요. 군사 쿠데타인데도 총격은 거의 없었어요. 다음 날 군중은 거리로 나와 군인들에게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혁명의 성공을 축하했지요. 군인들은 카네이션을 총구에 넣거나 제복에 고정했어요.

이후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은 곧 독재 타도 혁명과 비폭력,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습니다. 새로 수립된 정부는 정치범을 석방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어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모잠비크 등도 독립했습니다. 오늘날 포르투갈에서는 4월 25일을 국경일인 '자유의 날'로 기념하고 있어요. 리스본 타호강을 가로지르는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의 이름은 원래 독재자의 이름을 딴 '살라자르 다리'였는데,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 거랍니다.

부패 정권 두 차례 밀어낸 튤립 혁명

'튤립 혁명'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있는 키르기스스탄에서 2005년 3월 발생한 반정부운동을 가리켜요. 키르기스스탄 북부 산악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 튤립이 혁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튤립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튤립은 키르기스스탄의 국화(國花)이기도 합니다. 이 혁명은 '레몬 혁명'으로도 불리는데요. 레몬색이 시위대의 상징색이었기 때문이에요.

키르기스스탄에서 일어난 튤립 혁명은 1991년부터 14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한 아스카르 아카예프의 부정선거로부터 촉발됐어요. 2005년 2월 총선에서 여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선거 중 매표(買票·투표할 사람에게 돈을 주고 표를 얻는 일)와 언론 조작 등의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게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했죠.

시위는 남쪽에서 시작돼 수도까지 이르렀고 시민들은 선거 무효와 아카예프의 사임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어요. 정부는 무력으로 집회를 진압하고 지도자를 체포했어요. 신문과 라디오방송을 검열해 이와 관련된 보도도 통제했죠.

하지만 그럴수록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어요. 시위대는 남부의 도시와 대통령궁까지 점령했어요. 결국 대법원은 "총선은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공무원, 은행가, 비정부 기구는 아카예프의 부패 혐의를 조사했어요. 이에 아카예프는 러시아로 망명하고 총리 니콜라이 타나예프도 사임했죠. 이후 반정부시위를 주도했던 인민행동당(PMK)의 당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답니다. 하지만 혁명의 주역이었던 바키예프 대통령마저 친인척 비리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개혁에 실패했어요. 이에 2010년 제2의 튤립 혁명이 일어나며 타도의 대상이 됐죠. 바키예프 역시 국민의 심판을 받고 물러나게 됩니다. 튤립 혁명은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의지로 부패 정권을 몰아낸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부정선거에 항의한 오렌지 혁명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는데요. 독립 후에도 드니프로강을 경계로 동쪽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친러 정책을 지지하고, 서쪽은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친서방적인 경향을 보였어요.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는데요. 동쪽을 대표하는 여당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와 서쪽을 대표하는 야당의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맞붙었어요. 그런데 투표 과정에서 여당 측의 부정선거 정황이 드러났고,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에 항의해 거리로 나왔지요.

이들은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의 옷·두건·목도리 등을 착용하고 오렌지색 깃발을 들고 나와 부정선거를 규탄했어요. 시위는 약 2주간 이어졌어요. 결국 대법원은 선거를 무효로 판결하고 재선거를 명령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선거 감시인단이 입회한 가운데 재선거를 실시한 결과, 유셴코가 약 52% 득표율로 당선됐어요. 오렌지 혁명은 구소련의 권위주의적 부패 정권을 교체한 민주주의 시민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색깔 혁명은 중동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이란에서는 '초록색 혁명'(2009~2010), 팔레스타인에서는 '올리브 혁명'(2011) 등이 일어났지요. 민주주의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화약 없는 색깔 혁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SNS가 주도한 이집트의 연꽃 혁명]

2011년 1월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독재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됐어요. 이를 '연꽃 혁명'이라고 하는데요. 이 혁명은 혁명을 주도하는 야당 지도자나 혁명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주요 인물이 없는 것이 특징이에요. 페이스북을 통해 한 청년 단체가 시위를 제안하고 많은 시민이 호응하면서 혁명이 시작됐거든요. 집회 장소, 시간 등의 정보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었죠. 최근에는 이처럼 SNS가 또 다른 시위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일어난‘카네이션 혁명’을 기리는 벽화. /위키피디아
1974년 포르투갈에서 일어난‘카네이션 혁명’을 기리는 벽화. /위키피디아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