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고대 그리스 항아리 모습에서 유래… 축구공, 주전자 닮은 것도 있어요

입력 : 2022.06.07 03:30

스포츠 트로피

기원전 440년에 만들어진 암포라(와인이나 기름 등을 보관하던 항아리·왼쪽)와 테니스 대회인 프랑스 오픈의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 /롤랑가로스·위키피디아
기원전 440년에 만들어진 암포라(와인이나 기름 등을 보관하던 항아리·왼쪽)와 테니스 대회인 프랑스 오픈의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 /롤랑가로스·위키피디아
최근 축구 선수 손흥민이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021-2022 시즌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지난 5월 입국한 그의 손에는 득점왕 트로피가 들려 있었어요. 축구화 한 짝을 정교하게 본뜬 황금색 트로피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세계 유명 대회의 트로피 디자인에 대해 알아볼게요.

통상 트로피 하면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 모양을 떠올리는데요. 이는 고대 그리스의 '암포라'(와인이나 기름 등을 보관하던 항아리) 모습에서 유래한 거예요. 당시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면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과 함께 올리브기름이 가득 찬 암포라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후 17세기 북미 뉴잉글랜드 지역의 경마대회에서 이런 모양의 은제 트로피를 만들어 수여한 뒤, 그 모습이 이어져오고 있지요.

테니스나 골프 등 유서 깊은 스포츠 종목의 트로피는 암포라를 닮은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테니스 대회인 프랑스 오픈의 남자 단식 우승 트로피는 독특하게도 거대한 컵처럼 생겼어요. 양쪽에 달린 작은 손잡이에 백조가 각각 조각돼 있습니다. 이 트로피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럽의 보석상이자 금세공업체인 메종 멜레리오에서 만든 거예요. 1613년 창업 이후 유럽의 귀족과 왕실을 위해 여러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이때의 솜씨가 트로피 제작에 활용되고 있는 거죠.

이 업체에서는 매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축구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황금공)상'의 트로피 또한 만들고 있는데요. 이 트로피는 황금색 축구공 모양이랍니다. 장인이 망치를 들고 두드려 반구형의 황동 두 쪽을 만든 뒤 하나로 용접하고, 끌과 망치로 금속 표면에 축구공의 솔기 모양을 표현한 후 18K로 도금해요. 디자인 자체는 현대적이지만, 수공예의 산물이랍니다.

골프 대회 중에서도 독특한 모양의 트로피를 수여하는 곳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의 트로피는 높이 51.2㎝, 무게 2.45㎏의 은주전자 모양입니다. '클라레 저그'라고 하는데요. 클라레는 프랑스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의미해요. 포도주 1병을 채우면 클라레 저그가 꽉 찬대요. 우승자는 본품과 같은 크기의 복제품을 1년간 소장하다 반납하는데, 실제 주전자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