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싱싱하다고 '생태', 검다고 '먹태'… 호칭은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에요
입력 : 2022.06.02 03:30
뭐라고 불러야 해?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부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야"와 "학생" 중 무엇으로 부를 때 더 기분이 좋을까요? 아마 "학생"일 거예요. 나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호칭은 '부르는 이름'을 뜻해요. 우리는 이름 외에도 여러 가지 호칭을 가지고 있어요. 할머니는 나를 손주라고 하고, 이모와 고모는 조카라고 하죠. 친구들은 친근함의 표시로 따로 별명을 지어 나를 부르기도 하고요.
이 책은 천준형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이에요. 책 표지에는 명태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요. 책 속에 다른 물고기는 등장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달랑 명태의 이야기뿐이죠.
명태에게는 불만이 있어요.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때 부르는 '명태'라는 번듯한 이름이 있는데도 말이죠. 그물로 잡혔다고 '망태', 낚시로 잡혔다고 '조태', 싱싱하다고 '생태', 꽁꽁 얼었다고 '동태', 속이 노란색일 땐 '황태', 껍질이 검다고 '먹태', 꾸덕꾸덕 말렸다고 '코다리', 바싹 말리면 '북어'….
우리도 명태처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갑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네요. 우린 엄마와 아빠로 부르지만, 회사에 가면 과장·부장과 같은 직책으로 불려요. 백화점에 갔을 땐 고객님이 됐다가 아줌마·아저씨·언니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다양한 호칭에 우리는 고개를 들어 대답합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는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부르는 단어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 많은 호칭 중 무엇이 나를 부르는 것인지 금방 알아차리는 것도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지요.
이 책은 명태에게 붙은 각각의 이름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명태의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줘요. 투덜투덜 기나긴 이름 소개를 끝낸 명태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요. "너는 날 뭐라고 부를 거야? 나는 널 뭐라고 부르면 돼?" 작가는 명태를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해요. 과거엔 내가 어떤 호칭으로 불렸는지, 지금 불리고 있는 호칭은 무엇인지, 그렇게 불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중에서는 자랑스러운 호칭도 있지만, 반대로 듣기 싫은 호칭도 있겠죠. 하지만 호칭을 내 맘대로 정할 수는 없어요. 내가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나를 그렇게 불러주진 않는다는 거예요. 이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젠가 내가 원하는 아주 멋진 호칭을 갖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