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계획대로 안 돼도 모두 '나의 여행'…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깨달았어요

입력 : 2022.05.23 03:30

우물 밖 여고생

[재밌다, 이 책!] 계획대로 안 돼도 모두 '나의 여행'…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깨달았어요
슬구(신슬기) 지음 l 출판사 푸른향기 l 가격 1만4000원

"비행기를 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에요. 여행은 마음이 울컥하는 거예요. 바로 옆 동네일지라도 그곳이 당신 가슴을 뛰게 했다면, 그건 여행이에요. 그래서 전 여행이 좋아요."

저자 슬구씨는 열여덟 살에 일본행 비행기 표를 삽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였고, 처음 혼자 떠난 여행이었어요. 원래 엄마와 가기로 했는데, 엄마가 "바빠서 못 간다"고 하자 "그럼 나 혼자 갈게"라고 했던 거죠. 엄마에 대한 서운함으로 내뱉은 말이 생애 첫 혼자 여행의 계기가 된 거예요.

짧은 일본 일정이었지만, 슬구씨는 홀로 하는 여행의 매력에 빠집니다. 비 오는 길을 헤매다 숙소를 찾았을 때 짜릿함, 일본인 할아버지와 손짓·표정을 동원해 대화할 때 즐거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이들과 서로의 여행을 응원할 때 마음을 꽉 채우던 뿌듯함…. 슬구씨는 생각합니다.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이때부터 슬구씨 여행은 학교생활 틈틈이 이어집니다.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서 말이죠. '우물 밖 여고생'이 된 거예요. 슬구씨는 인물이 없는 풍경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인터넷에 보면 멋있는 풍경 사진은 흔하니까요. 그래서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풍경에 자신을 담아 사진을 찍습니다.

슬구씨 부모님은 어땠을까요. 전교 1등을 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는 "그래, 잘했네" 한마디만 했다고 해요. 최악의 수학 점수를 받았던 중학교 2학년 때도 부모님은 놀라지 않았대요. 일본 여행을 혼자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장하다. 역시 넌 정말 멋진 딸이야" 했대요. 성적표에 적힌 숫자로 딸을 판단하지 않았던 거죠. 딸이 넓은 세상을 부지런히 걷고 경험하며 행복을 찾아 나가기를 바라셨다고 해요.

슬구씨는 여행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칠 때 괴로웠어요. 여행에 '실패'했다는 자책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이내 자신이 만든 계획에 얽매이기 때문에 괴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고는 여행을 계획대로만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게 돼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든 날씨가 나빠 목적지에 가지 못하든, 모두 '나의 여행'이라는 걸 받아들입니다. 인생도 그렇다는 걸 깨닫게 돼요.

열여덟 살 여행을 기록했던 슬구씨는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도 여행 중이라 해요. 대학에 떨어지고 "만세"를 외쳤고, 롯데월드 알바, 쇼핑몰 운영, 여행 강연자 등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20대를 보내고 있답니다. 여행이 자기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타인과 자신을 향한 진실된 미소를 선물해줬다네요. 지금도 길 위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랍니다.

서현숙 '소년을 읽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