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신라 장군들, 높이 130㎝ 정도 조랑말 타고 전투했어요
경주 쪽샘 유적
- ▲ 경주 쪽샘 신라고분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사람 갑옷(札甲·찰갑)과 말갑옷(馬甲·마갑)이 발견됐어요. 사진은 쪽샘 유적의 말갑옷을 복원한 모습이에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다음 달 12일까지 '서울에서 만나는 경주 쪽샘 신라고분' 특별전을 열어요. 쪽샘 유적은 경주 시내 중심지에 있는데, 천마총·황남대총 등 초대형 고분이 있는 대릉원(大陵苑) 동쪽에 자리해요. '쪽샘'이라는 이름은 이곳 우물물이 쪽빛을 띠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쪽박으로 샘물을 떠서 붙여졌다고도 하죠. 이곳에는 지금도 많은 우물이 남아 있답니다.
이번 전시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하고 있는 경주 쪽샘 유적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들을 한데 모아 소개하고 있는데요. 쪽샘 고분군에서 어떤 재미난 유물이 발견됐는지 알아볼까요?
경주 고분에서 가장 넓은 발굴 현장
쪽샘 유적은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경주 지역 고적 조사 때 가장 먼저 발굴이 시작된 곳이에요. 당시 발굴은 학술적인 목적으로 체계적인 조사가 진행됐다기보다 일제가 진귀한 보물을 수집해 자신들의 식민 통치를 홍보하려는 의도에서 이뤄졌는데, 쪽샘 고분 발굴에선 그다지 큰 성과를 얻지 못했어요.
1970년대에는 대릉원에서 천마총·황남대총 등 유명한 유적들이 잇달아 발굴됐는데요. 이곳에서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 유리그릇 등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 뒤 대대적인 보존과 정비가 이뤄져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됐죠.
하지만 쪽샘 유적 일대는 그 대상에서 제외됐고, 관광객을 위한 상점이나 식당, 민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유적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어요. 이런 문화유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 경주시에서는 쪽샘 고분공원 조성 사업을 계획했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 발굴을 진행하고 있어요.
쪽샘 유적은 조사 면적이 22만9674㎡(약 6만9476평)로 경주 지역 중심 고분군에 관한 발굴 중 가장 범위가 넓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무덤 69기가 남아 있다고 보고됐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덤이 992기나 남아 있대요. 지상에 아무런 흔적이 없어 무덤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곳에서 수많은 무덤을 새롭게 찾아냈고 어느 무덤부터 먼저 만들고 어떻게 경계를 구분했는지, 무덤을 만들면서 어떤 제사를 지냈는지 등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됐어요.
무덤에서 환생한 중무장 기병
쪽샘 C10호 덧널무덤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사람 갑옷(札甲·찰갑)과 말갑옷(馬甲·마갑)이 발견됐어요. 신라 중무장 기병(騎兵)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무덤의 가장 밑바닥에 말의 목과 가슴·몸통·엉덩이를 덮었던 쇠 갑옷이 정연하게 깔려 있었고, 그 주변에서 재갈과 안장·발걸이 등 말을 타는 데 필요한 각종 말갖춤(馬具·마구: 말을 부릴 때 쓰는 연장)이 함께 나왔어요.
또 말을 타고 달리던 무사의 무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덤 주인공의 오른쪽에 고리자루 큰칼(환두대도)과 창 같은 무기류가 놓여 있었고, 발치에서는 머리에 쓰는 투구와 몸통을 보호하는 갑옷이 함께 발견됐어요.
이곳에서 발견된 말투구 볼가리개의 아랫부분에는 네모난 철판을 쇠못으로 고정해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요. 이를 통해 살아생전 실제 사용하던 말갑옷을 묻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어요. 말갑옷은 수백 개의 파편으로 이뤄져 본래 형태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쪽샘 유적 말갑옷의 발견으로 1500여 년 전 신라 중무장 기병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답니다.
조랑말을 탄 신라 장군을 만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C10호 덧널무덤에서 발견된 말갑옷을 잘 수습하기 위해 이 무덤에서 발견된 각종 갑옷·투구 등을 흙에 묻혀 있는 상태 그대로 연구실로 옮겨왔는데 그 무게가 18t이나 됐다고 해요. 그리고 약 10년에 걸친 보존 처리와 연구 끝에 신라 말갑옷의 특징을 밝혀냈는데요. 쪽샘 말갑옷은 두께 약 0.1㎝의 철판 740장에 작은 구멍을 뚫어 이를 가죽으로 연결해 완성한 것이었어요. 연구를 통해 전체 길이 약 2.9m, 무게 36㎏에 이른다는 것이 드러났죠. 또 말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목과 가슴·몸통·엉덩이 부분에 제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의 쇠판을 사용한 것도 밝혀냈어요.
쪽샘 유적의 무덤 주인공이 어떤 말을 탔는지도 추정할 수 있었어요. 역사 드라마에서는 옛날 장군들이 크고 건장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삼국시대 한반도에는 그런 품종의 말이 사육되지 않았어요. 신라 왕궁이 있던 월성의 둘레를 감싸고 도는 월성해자에서는 멧돼지·소·말 등 많은 동물의 뼈가 발견됐는데요. 말뼈를 분석해 봤더니 월성에서 발견된 말은 높이가 120~136㎝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신라의 말 탄 사람 모양 토우(土偶)나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삼국시대 말은 대부분 다리가 짧고,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발이 땅에 닿을 정도로 체구가 작아요. 그러니 실제로는 갑옷을 입은 작은 조랑말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신라의 장군을 태우고 다녔을 것이랍니다.
[동물 모양 그려진 토우]
토우(土偶)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에요. 주로 사람이나 동물 모양을 표현했어요. 토우에는 짐을 나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등이 묘사되고 뱀이나 새·개구리·거북 등 다양한 동물이 표현돼 있어요.
쪽샘 B지구 6호 무덤에서는 33점의 토우가 발견됐는데, 신라인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나 믿음과 바람을 잘 보여주고 있답니다. 또 쪽샘 44호 무덤에서 발견된 긴목 항아리 목 부분에는 말을 탄 인물이나 말이 열을 지어 걸어가는 장면, 춤추는 장면, 활을 든 인물이 사냥하는 장면 등이 음각으로 그려져 있어요.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렬도와 비슷해서 사냥이나 춤이 조합된 행렬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답니다.
- ▲ 쪽샘에서 발견된 사람 갑옷을 재현한 모습이에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쪽샘 말갑옷은 두께 약 0.1㎝의 철판 740장에 작은 구멍을 뚫어 이를 가죽으로 연결해 완성한 것이었어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말 탄 무사의 토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쪽샘에서 발견된 말 투구의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 투구와 목가리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