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새끼 낳는 누, 먹잇감 사냥하는 맹수…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모습 담아냈죠
초원
우미정 지음 l 출판사 책고래 l 가격 1만3000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1972년 가수 남진이 발표한 '님과 함께'라는 노래의 일부인데요. '초원'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젊은 작가 우미정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 책에서 초원은 자연의 생생함이 그대로 담긴 곳이에요.
책에는 새끼가 어미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누'의 출산 장면이나 표범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긴 채 축 늘어진 초식동물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묘사돼 있죠. 탄생의 순간을 그린 장면에는 "내가 태어난 곳 네가 자란 곳", 죽음의 순간에는 "그저 사라지다가"라고만 적어 놓았네요. 짧고 담담한 문장이에요. 그런데 읽는 이들은 오히려 더 숙연해지네요.
"마른 길 지나 먼 길 돌아서 / 비가 올 때쯤 / 넓게 펼쳐진 이곳 초원은 / 내가 태어난 곳 네가 자란 곳 / 잠시 기대고 / 잠시 머물고 / 다시 돌아오는 곳 / 함께 달리고 / 목을 축이고 / 하늘엔 새가 날아가는 곳 / 그대로 자라고 / 그저 사라지다가 / 어두운 밤 어느 때보다 고요할 때 / 바람이 불 때 곧 비가 올 것을 알 때 / 달려서 날아서 / 다시 움트고 다시 움직이는 곳."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은 이게 전부예요.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비슷하죠.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는 이 간결함 때문에 우리는 작가가 그려놓은 장면보다 훨씬 더 많은 풍경을 느낄 수 있어요. 읽는 사람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직접 뛰어들어가 적극적으로 상상하도록 만든 거예요.
우미정 작가는 어린 시절 유독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다고 해요. 이런 성격 탓에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대요. 이 책에서 작가는 "감정 표현이 서툰 나에게 그림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 상상과 미래를 여는 가장 넓은 창문이었다"며 자신이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어요.
이 책의 탄생 배경도 흥미로워요. 작가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늘 노력해 왔는데, 특히 감정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지속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이름 모를 잡초들의 강인함과 본능에 정직한 동물들의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삶을 보고 느끼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네요.
그래서일까요?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귀에서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네요. 그것은 초원을 달리는 누와 얼룩말과 코끼리와 표범의 심장 소리이기도 하고, 어느새 그들과 함께 초원을 달리고 있는 우리의 심장에서 나는 소리일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