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기교·감성 뽐내는 팔순의 피아니스트… 노익장이란 이런 것
입력 : 2022.05.09 03:30
마우리치오 폴리니
- ▲ 세계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오는 19일과 25일 양일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첫 독주회를 열어요. 올해 팔순인 그는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합니다. /마스트미디어·
폴리니처럼 80대 가까운 나이에 들어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노익장(老益壯)을 뽐내는 음악가가 많은데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폴리니가 걸어온 길과 함께 세계 음악계의 노익장들에 대해 알아볼까요?
정확하고 빈틈없는 기교가 강점
폴리니는 1942년 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현대 이탈리아 건축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지노 폴리니였고, 어머니는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한 분이었어요. 어린 마우리치오는 예술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6세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명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1920~1995)를 사사하고, 1957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60년 세계 최고의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인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대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우리 심사위원 중 이 소년보다 기술적으로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죠.
어린 나이에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지만, 폴리니 자신은 그다지 만족하지 않았어요. 연주자로서 자신의 실력이나 공부가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죠. 그는 콩쿠르 직후 연주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밀라노 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고 새로운 피아노 레퍼토리(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곡들)를 착실히 익힌 폴리니는 1968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데뷔하며 본격적인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어요.
그는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음반 녹음 작업도 했는데, 애호가들의 반응은 처음부터 매우 뜨거웠습니다.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이 담긴 첫 음반을 시작으로 쇼팽과 슈베르트, 슈만 등의 녹음이 연달아 주목받으면서 폴리니는 세계적인 인기를 빠르게 얻게 됐죠.
데뷔 이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폴리니는 "어떤 작품이든 가장 이상적인 해석을 하는 피아니스트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개성이나 기교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고 작곡가가 남긴 악보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작품을 과장 없이 전달하는 것이 폴리니의 스타일입니다. 이런 연주에 필수적인 정확하고 빈틈없는 기교 역시 그가 지니고 있는 최대의 강점이죠.
그래서 예전부터 그의 녹음들은 콩쿠르나 시험 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처럼 여겨져 왔어요. 그중 쇼팽의 연습곡집, 베토벤의 소나타 등은 특히 정평이 나 있습니다.
60대 돼서야 떨쳐낸 '연주 부담감'
고전파와 낭만파 레퍼토리들을 주로 연주하는 폴리니는 20세기 작곡가들의 작품도 즐겨 다룹니다.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등 '제2 빈악파'를 비롯해 자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피에르 불레즈,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루이지 노노 등의 작품들이 그가 즐겨 연주하는 20세기 곡이죠. 폴리니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너무 난해해 연주하기 꺼리는 이 작품들의 기교적 문제를 완벽하게 극복하고 학구적인 접근 방법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줍니다.
그는 한때 지나치게 차갑고 기계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고, 라이브 연주에서도 스튜디오 녹음처럼 완전무결한 연주를 바라는 청중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해요. 하지만 60대 이후의 폴리니는 주위의 평가로 인한 부담감 등을 모두 떨쳐버린 홀가분한 모습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발표 이후 지금까지 건반악기 연주의 기준이 되고 있는 바흐의 명곡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의 녹음을 2009년 발표했고, 2014년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을 39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마침내 완성했죠. 오래전부터 애정을 보인 작곡가 드뷔시의 전주곡집 2집은 1집을 발표한 후로부터 20년이 흐른 2018년 발표해 원숙하고 세련된 음향으로 호평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작곡가 쇼팽의 작품에 평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미 주요 작품들을 모두 녹음했지만 최근에는 쇼팽의 후기 작품 중 녹턴, 마주르카, 뱃노래 등을 새롭게 녹음해 한층 짙어진 감성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해석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노익장 뽐내는 연주가들
폴리니와 같이 80대에 들어서거나 70대 후반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7일과 18일에는 루마니아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77세, 미국의 피아니스트 니컬러스 안겔리치가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많은 음악 팬이 슬픔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팔순의 나이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세계적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1942~)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최근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공연을 열고 판매 기금을 기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아르헨티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는 50대에 암 투병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도 젊은이와 같은 에너지가 담긴 연주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1946~)는 소위 '베토벤 전문가'로 불리며 베토벤 작품 해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는 베를린·드레스덴·밀라노·빈 등 세계 무대에서 50회 이상 총 32개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가졌는데요. 76세인 지금도 세계적인 지휘자·오케스트라와 50년 넘는 세월 동안 활발히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과 2021년에 이어 오는 6월에도 한국을 찾아 내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백건우(1946~)의 무대도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넘칩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피아노 소리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 이스라엘의 세계적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도 팔순의 나이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어요. /유니버설뮤직코리아
- ▲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76세인 지금도 세계적인 지휘자·오케스트라와 50년 넘는 세월 동안 활발히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빈체로
- ▲ 우리나라의 국민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백건우의 무대도 뜨거운 열정으로 넘쳐요.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