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천문학자·물리학자가 직접 쓴 SF소설… 과학적 논리와 문학의 감성이 만났죠
떨리는 손
김창규 외 4명 지음 l 출판사 사계절 l 가격 1만3000원
SF(Science Fiction)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문학 또는 매체 장르를 뜻해요. SF는 과학에서 출발했지만, 문학의 영역이다 보니 그동안 창작은 주로 문학 작가들의 몫이었어요.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직접 쓴 SF는 어떤 모습일까요? 과학자의 논리가 문학의 감성과 만나면 어떤 SF가 태어날까요? 이런 궁금증에서 이 책은 출발했답니다. 이 책은 천문학자, 물리학자,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쓴 SF 소설 5편을 담고 있어요.
그중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떨리는 손'은 외계인의 관점에서, 인류의 자녀 양육 방식과 사피엔스 종의 진화를 바라보는 작품입니다. 헤이즐과 실버는 어린 아기를 양육하는 부부예요. 어느 날 헤이즐이 유축기로 짠 자신의 젖을 담아 놓은 봉투를 밟고 말아요. 그 바람에 봉투가 터져 버리죠. 아기는 먹을 젖이 없어 울고, 부부는 싸웁니다. 헤이즐은 화가 난 나머지 여자인 실버에게 "애당초 네가 젖을 먹였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요. 젖을 먹이던 헤이즐이 아빠였던 거지요.
어찌 된 일일까요? 이 행성은 '임성평등법'을 제정했는데요. '임신 출산 및 수유와 양육에 있어 부모 양쪽의 성별에 상관없이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는 법안'의 줄인 말입니다. 이 법을 따르느라 엄마 실버가 아기를 낳고 아빠 헤이즐이 수유를 담당했던 거예요. 남성에게도 유선(乳腺)이 남아 있어서, 이 행성에서는 남성이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수유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데요. 소설의 배경은 인류가 멸종한 후였어요. 지구에 온 외계인은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인간의 방식이 지나치게 번거롭고 복잡해서 인류가 멸종했다고 판단하지요. 그래서 외계인들은 인간 부부가 임신, 출산, 육아를 공평하게 분담해 육아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도록 가상의 시뮬레이션 실험을 한 거예요. 헤이즐과 실버의 생활은 외계인의 실험이었던 거죠. 작가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육아를 둘러싼 현실의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답니다. 이 책은 이 외에도 죽은 사람의 내면 정보를 보관해 죽은 자와 산 자가 소통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한답니다.
과학자에게는 SF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이은희 작가는 소설을 쓸 때와 과학을 연구할 때의 즐거움이 다르지 않았다고 해요. 과학자는 세상에서 자신만이 아는 지식을 알아냈을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데,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소설로 풀어내는 즐거움도 그 못지않게 컸다고 합니다. 책이 과학과 SF를 잇는 다리가 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