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전시상황·민심·날씨 꼼꼼하게 기록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됐죠
난중일기
- ▲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쓴 일기. /문화재청
"맑았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다.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또 80세의 병드신 어머님 생각에 애태우며 밤을 새웠다."
(1595년 1월 1일)
지난달 28일은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이었어요. 1967년 처음 '충무공 탄신일'로 제정됐고, 2013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명칭이 바뀌었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기간에 쓴 '난중일기'는 역사 기록의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에는 국보 제76호에,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어요.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1월부터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인 1598년 11월까지의 일을 담고 있어요. 개인의 일기지만 전쟁 중 수군통제사, 즉 해군의 최고 사령관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쟁의 상황과 민심, 지형과 날씨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역사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난중일기'에는 나라를 위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자주 드러나요. 1597년 9월 15일 일기에는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나라를 걱정하며 밤을 새웠다는 기록도 여럿이에요. 연세가 많은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효자로서의 면모도 곧잘 보인답니다.
그런가 하면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위기에 놓였는데, 편을 갈라 싸우는 조정 대신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적혀 있어요. 이 중에는 어릴 적 친구이자 자신을 발탁해 수군통제사를 맡긴 당시 영의정 유성룡을 걱정하는 내용도 있죠. 조선의 대신들 외에도 명나라와 일본 장수들에 대한 품평도 곳곳에 남겼답니다. 특히 일본 장수들에 대해서는 "신의가 없고 교활, 흉악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막내아들이 전장에서 왜군의 손에 죽은 터라 그 적개심은 더 컸다고 할 수 있어요.
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의 면모뿐 아니라 나약한 인간의 모습도 제법 많아요. 그는 백의종군 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올랐지만, 복귀한 수군 군영(軍營)의 모습은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해요. 이때 이순신 장군은 아무도 없는 구석에 주저앉아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고 하죠. 병사들과 술 한잔을 나누는 소탈한 성격을 지녔지만, 군율을 어기거나 직무 태만을 한 사람은 가차 없이 처벌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죠.
이처럼 한 나라의 지휘관이 직접 군중의 일 등을 기록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해요. 참담한 전쟁의 모습, 무능한 조정 정치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의 생활상까지….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