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佛 르 코르뷔지에의 첫 한국인 제자… 삼일빌딩과 주한佛대사관 설계했죠

입력 : 2022.04.26 03:30

건축가 김중업

김중업 /이진한 기자
김중업 /이진한 기자
올해는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탄생 100주기입니다. 김중업은 김수근과 더불어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데요. 그는 평양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시와 그림에 재능이 있었는데, 이와 가까운 분야가 건축이라고 생각해 1939년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현 요코하마국립대)로 유학을 갑니다. 그는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며 유려한 드로잉 실력뿐 아니라 건축을 공학이 아닌 예술로 보는 건축관을 확립했어요.

일본에서 실무를 익히다 1944년 귀국한 김중업은 1947년 25세의 나이에 서울대 조교수로 임용됐어요. 하지만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며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갔죠. 이곳에서 시인 구상, 화가 김환기, 이중섭 등 내로라하는 예술인과 교류를 하게 됩니다.

그는 1952년 7월 유네스코 주최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1회 세계예술가대회에 한국 건축가 대표로 참가합니다. 이때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를 만나게 되는데요.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말을 남기며 기능에 충실하고 합리적인 모더니즘 건축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죠.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뒤 파리로 찾아가 3년 2개월간 함께 일하며 그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가 됐어요. 이는 그동안 일본을 통해 서구 건축을 간접적으로 배웠던 한국 건축사에서 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해요. 1956년 귀국한 김중업은 서구 모더니즘 건축과 한국 전통을 결합한 독창적인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1962년 완공한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국 전통 건축 특유의 날렵하고 우아한 지붕 곡선을 콘크리트라는 현대 건축 재료로 표현하며 극찬받았습니다. 이곳은 지금도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물 중 한 곳으로 꼽혀요. 특히 당시 서울 최고층 마천루였던 31층짜리 삼일빌딩(1970)까지 완공하며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불리게 됩니다.

김중업은 건축가로서 사회적인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어요. 1971년 서울시가 철거민 이주를 졸속 추진하다 대규모 저항에 부딪힌 경기도 광주 대단지 사건 때에는 국가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외국으로 강제 추방됩니다.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과 하버드대학에서 초빙교수를 지내다 1978년에야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됐어요. 그 후 올림픽공원에 있는 세계평화의문(1988)을 유작으로 타계했습니다.

김중업이 1962년 완공한 주한프랑스대사관. /조인원 기자
김중업이 1962년 완공한 주한프랑스대사관. /조인원 기자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