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공사장서 쓰러진 아버지 9년간 돌봐… 20살 청년 통해 본 사회적 돌봄 문제

입력 : 2022.04.18 03:30
[재밌다, 이 책!] 공사장서 쓰러진 아버지 9년간 돌봐… 20살 청년 통해 본 사회적 돌봄 문제

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지음 l 출판사 이매진 l 가격 1만3000원

청년은 스무 살이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스무 살은 부모에게서 이제 막 독립을 시작할 나이지요. 청년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작가도, 댄서도 되고 싶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노력하고 있을 무렵, 예상하지 못했던 전화를 받게 됐어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공사 현장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스무 살 청년은 응급실에 누운 아버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했고, 이후 청년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거든요. 보호자가 된 청년은 우선 몇 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평소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사 노동을 맡기지 않았어요. 혼자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달걀미역국과 양파볶음을 곧잘 만들어주기도 했죠. 하지만 돈을 모아놓지는 못했어요. 청년은 연락이 뜸했던 작은아버지와 고모에게 병원비를 보태달라고 부탁하지만, 다들 형편이 어려워 돈을 보태주지 못합니다. 결국 아버지와 사는 다세대주택 월세 보증금 1000만원을 빼서 병원비를 냈어요.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조금 나아져 퇴원합니다.

"아버지는 일이 인생의 전부였고 일 덕에 웃고 떠들 사람을 만났는데, 모든 것이 한순간에 주저앉았다. 일상에서 인사를 나눌 사람도 없고 넘치는 시간을 채울 활동도 없었다. 연장은 오랜 시간 쓰지 않아 녹이 슬어갔다." 아버지는 퇴원했지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고는 알코올성 치매 초기에 진입하게 돼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집니다.

청년은 아버지를 돌보고 가계를 책임지느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 했지요. 이 책은 저자가 '아빠의 아빠'로 지낸 9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9년 동안 안간힘을 다해 살아냈어요.

이 책은 저자의 개인 경험담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향해 질문해요.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환자를 돌보는 이가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인가. 가족이 아픈 이를 잘 돌보고, 아픈 이를 돌보는 가족 또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으려면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곧 저자의 고민이기도 하지요. 자신의 글이 사회적 돌봄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발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서현숙·'소년을 읽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