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당신은 정의의 상징"… 바이런·헤밍웨이도 참전했죠
국제 의용군
- ▲ 오스만 제국은 독립군을 진압하기 위해 학살을 자행했고,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리스의 참담한 상황에 동조해 독립 전쟁에 참전하거나 식량·무기 등을 보냈는데요.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들라크루아는 1822년에 그리스의 키오스섬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그려내(사진) 관심을 촉구했어요. /위키피디아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하고 있어요. 의용군은 대의(大義)를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로 조직된 군대를 의미합니다. 공식적인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무기 확보나 지휘부와의 소통 등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수만 명이 목숨을 걸고 전선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념을 위해 민간인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한 의용군이 이전에도 있었는데요. 어떤 이유였을까요?
그리스 독립 전쟁에 뛰어든 필헬레네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5세기부터 그리스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어요. 그러다 19세기 전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에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자 유럽을 오가던 그리스 상인들은 독립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1814년 오데사(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그리스 상인들을 중심으로 그리스의 독립을 위한 '헤타이리아 필리케(우호형제단)'가 결성됩니다. 이후 1821년 3월 25일(그리스 독립 기념일) 그리스 여러 지역에서 독립군이 일어났고 이듬해 1월 독립군은 그리스 독립을 선언합니다. 당시 깃발에 새겨졌던 독립군의 슬로건이 바로 "자유냐 죽음이냐"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했어요.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리스의 참담한 상황에 동조해 독립 전쟁에 참전하거나 식량·무기 등을 보내며 응원했는데요.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들라크루아는 1822년에 그리스의 키오스섬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그려내 관심을 촉구했어요. 영국의 유명한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1823년부터 직접 전쟁 기금을 마련하며 그리스 편으로 참전했다가 이듬해에 말라리아로 그리스에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에 유럽·북미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양 고대 문화의 발원지이자 기독교 세계인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이슬람 세력인 튀르크인을 몰아내는 것이 숙명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어요. 이때 유럽 열강 국가들의 개입으로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영국·프랑스·러시아는 해군 함대를 보내 1827년 펠로폰네소스반도 남서안의 나바리노만에서 오스만 제국과 이집트 함대를 격파했어요. 이후 1829년 런던조약으로 그리스가 독립해 그리스 왕국이 성립됩니다.
이렇게 그리스 문화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필헬레네스(친그리스주의자)'라고 불리는데요. 독립 20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그리스 아테네에 그리스 해방을 위해 싸운 전 세계 1500여 명의 학생·군인·지식인들을 기념하는 필헬레네스 박물관이 문을 열었답니다.
파시스트 막기 위한 국제 여단
스페인 내전(1936~1939)은 1936년 2월 스페인에서 총선거로 구성된 공화파 인민전선 정부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의 파시즘 군부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됐어요. 반정부군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이끄는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탱크·비행기 등 군사적 지원을 받았어요. 소련은 파시즘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인민전선 정부에 무기·식량·군사 전문가 등을 지원했죠.
내전 초기 미국·영국·프랑스 등은 불간섭 정책을 고수했는데요. 하지만 인민전선 정부를 돕기 위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했어요. 폴란드·프랑스 등 50여 국에서 개인 자격으로 모인 약 3만5000명의 의용군이 '국제 여단(旅團)'을 결성했지요. 여성들도 간호사로 자원했어요. 파시즘 세력이 스페인을 점령해 자유를 짓밟으면 국제적 분쟁이 주변 국가에도 번질까 우려해 전쟁터로 달려온 거예요.
전체주의를 풍자한 내용의 소설 '1984'를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도 참전했는데요. 그는 전쟁 중 목에 총상을 입기도 합니다. 오웰은 이때 의용군과 함께 싸웠던 경험을 담은 '카탈루냐 찬가'를 저술했어요.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는 1936년 스페인 정부군에 전쟁 자금으로 4만달러를 보내기도 했어요. 이듬해에는 스페인의 종군기자로서 내전의 참상을 보도했지요. 이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연대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국제 여단은 2년간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으나 점차 지원병과 소련의 지원이 줄면서 1938년 스페인에서 철수합니다. 프랑코의 반란군이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스페인 내전은 막을 내렸어요.
국제 여단 해체 연설에서 '라 파시오나리아(정열의 꽃)'라 불렸던 인민전선의 선동가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화당원, 다양한 피부색, 다른 이념, 적대적인 종교를 가진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유와 정의를 깊이 사랑해 우리에게 와서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바쳤습니다. 당신은 역사입니다. 당신은 전설입니다. 당신은 민주주의의 연대와 보편성의 영웅적 본보기입니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시작된 시리아 내전
2011년 3월 시리아 남서부의 다라시에서 일어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시리아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이 시작됐어요. 군사 쿠데타로 1971년부터 장기 독재를 이어오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 거예요. 정부군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시민들은 '자유시리아군'(FSA)을 결성했어요.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이 같은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시아파와 적대 관계인 수니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반군을 각각 지원하며 개입했고, 여기에 미국·러시아까지 뛰어들며 국제전으로 발전합니다. 혼란을 틈타 극단적인 수니파 무장 단체인 IS(이슬람국가)가 시리아 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데요. 이에 미국·FSA·쿠르드 민병대(YPG)는 IS를 축출하기 위해 국제동맹군을 결성합니다. FSA에는 레바논·알제리 등의 의용군이, YPG에는 캐나다·스페인 등의 의용군이 자원 입대했어요.
시리아 내전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면서 많은 사상자와 난민이 생기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시리아 정부는 러시아를 돕는다며 용병을 모집해 보냈는데요. 자신들을 지원해줬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이번에 보답하겠다는 거죠.
[검은 셔츠단]
스페인의 국제 여단과 대비되는 의용군도 있는데요. 1919년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결성한 '국가안보의용민병대'입니다. 검은 셔츠를 제복으로 입고 다녀 '검은 셔츠단'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죠. 이들은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해 스페인 정부군과 총부리를 겨눴어요. 검은 셔츠단은 1922년 10월 5000명이 로마로 들어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을 성립시킨 '로마 진군'의 주역입니다.
- ▲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국제 여단의 모습. /위키피디아
- ▲ '라 파시오나리아(정열의 꽃)'라 불렸던 스페인 인민전선의 선동가 돌로레스 이바루리.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