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이탈리아 정복 나선 훈족 왕과 女전사 간 사랑과 배신

입력 : 2022.04.11 03:30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

①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무대에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아틸다’가 올려졌어요. 사진은 복수를 꿈꾸는 오다벨라(왼쪽)에게 청혼하는 아틸라의 모습. ②공연 중 아틸라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오다벨라. ③5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왕 아틸라를 그린 초상화. /국립오페라단·위키피디아
①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무대에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아틸다’가 올려졌어요. 사진은 복수를 꿈꾸는 오다벨라(왼쪽)에게 청혼하는 아틸라의 모습. ②공연 중 아틸라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오다벨라. ③5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왕 아틸라를 그린 초상화. /국립오페라단·위키피디아
이탈리아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1813 ~1901)는 수많은 오페라 곡을 만들어 세계 오페라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그의 작품인 '아틸라'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졌는데 한국에서는 처음 공연하는 거라고 합니다. 초연이 1846년 3월 17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페니체 극장이었으니 176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셈이죠.

이 작품은 베르디의 친구인 프란체스코 피아베가 역사 소설 '훈족의 왕 아틸라'를 각색해 대본을 쓰고, 베르디가 작곡을 맡아 만들었습니다. 훈족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했던 튀르크계(系) 유목 민족인데요. 5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왕 아틸라와 훈족에게 정복당한 땅의 여전사 오다벨라, 아틸라를 견제하는 장군 에치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죠. 전쟁을 배경으로 역동적인 사랑을 그린 역사극입니다.

국민 마음 하나로 만든 애국 작곡가

베르디가 남긴 수많은 명작 오페라는 지금도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대표작을 손에 꼽기에도 힘들 정도로 많지만, '리골레토' '일트로바토레' '라트라비아타' '아이다' '오텔로'가 베르디 5대 작품으로 통하죠. 과연 베르디는 어떻게 이탈리아를 넘어 오페라 문화를 대표하는 전 세계적 거장이 됐을까요?

베르디가 활동하던 19세기 이탈리아는 여러 군소(群小)국가로 분열돼 있었어요. 특히 북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지배 아래 있었고, 많은 이탈리아 국민은 이탈리아 통일 국가를 염원했습니다. 독립과 통일을 염원하는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부흥) 운동도 벌어졌죠. 오페라 '아틸라'가 이탈리아 국민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 역시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어요. 오페라 속에서 이탈리아인들이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에 대항하는 의지를 다지며 부르는 곡이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처럼 베르디는 오페라를 통해 자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많은 작품에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엿볼 수 있고, 그래서인지 '애국 작곡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죠. 1871년 이탈리아는 마침내 통일을 이루게 된답니다.

고뇌·번민하는 보통 인간 다뤄

베르디는 작품에서 당시 성행하던 오페라 형식과 차별화한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베르디 이전 바로크 오페라는 성악가 개인의 음악적 재능과 기교에 의존해왔어요. 관객에게 인기 있는 오페라 가수를 섭외하면 흥행이 보장되던 시기였죠. 음악은 오페라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오페라는 문학·연극·미술·무용·기술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이 달라요.

베르디는 그중에서도 언어와 음악의 조화에 주목했어요. 당시 대본과 오페라 가수의 연기 비중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성악가 목소리와 노래가 여전히 오페라 성패(成敗)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였는데, 베르디는 이런 관행을 깨고 오페라의 연극적인 요소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배우의 연기가 중요해졌고, 베르디는 특히 초인적이고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고뇌하고 번민하는 보통의 인간들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드라마틱한 음악과 강렬한 노래

5세기 전반에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훈(Huns)족의 왕 아틸라는 434년부터 453년까지 19년 동안 유럽을 점령했어요. 훈족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근거지로 성장한 대표적인 유목 민족이었는데, 아틸라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 침략 전쟁을 일으키죠. 그는 동쪽 카스피해에서 서쪽 라인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어요.

451년 아틸라는 현재 프랑스 영토인 로마의 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라인강을 건너 아울레리아눔(오를레앙)까지 진격하지만 카탈라우니아 평원 전투에서 패하고 맙니다. 그는 당시 서로마제국에 속했던 이탈리아 북부 대부분을 점령했지만, 결국 로마만은 굴복시키지 못하고 453년에 세상을 떠나요.

유럽 대부분 국가를 호령했던 아틸라왕에 대한 전설은 지금도 유럽 곳곳에 남아 있어요. 그에 대한 평가는 국가마다 달라요. 어떤 국가에서는 그를 위대한 용사이자 정의의 실현자로 부르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잔인하고 흉악한 전사로 묘사하죠.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독일문학 고전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중세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인데요. 이 전설을 바탕으로 태어난 오페라가 바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예요. 사랑하는 이들에게 속아 남편을 잃은 크림힐트가 훈족의 왕비가 돼 복수한다는 줄거리는 실제 훈족의 왕 아틸라가 437년 유럽을 침입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죠. 이 이야기 속에서 훈족의 왕은 '에첼'로 불리는데, 그가 바로 아틸라입니다.

오페라 '아틸라'는 아틸라왕의 이탈리아 침략과 그가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데요.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침략한 아틸라는 포로로 잡힌 영주의 딸 오다벨라의 당당함에 매혹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해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연인 포레스트가 있었죠. 포레스트는 아틸라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오다벨라가 독살당할 위기에 처한 아틸라를 구해주고, 이 때문에 오다벨라는 동족으로부터 외면받고 나중엔 결국 아틸라를 칼로 찔러 죽입니다.

작품 속에서는 훈족의 침략을 피해 주민들이 피신하는 섬이 등장하는데, 이 섬이 바로 베네치아의 기원이 되는 곳이라고 해요. 이 작품은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돼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많은 역사적인 배경 내용이 전해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잘 따라가려면 프롤로그를 잘 들어야 합니다.

'아틸라'는 드라마틱한 음악과 강렬한 노래들로 오페라 가수들 열창을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주인공 아틸라 역은 베이스 가수가 맡는데 오페라에서 남성 가수가 주인공일 경우에는 주로 테너나 바리톤이 많고 가장 낮은 음역인 베이스는 조역이 대부분인데 '아틸라'는 아름다운 저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무대예요. 오페라 2막에서는 아틸라와 에치오가 '영원한 영광의 정상에서'를 부르면서 저음 대결을 하는데 정말 압권입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