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보고 싶어, 음악을"… 소리에 색깔·몸짓 입혔죠

입력 : 2022.03.28 03:30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은 연주를 하며 음과 색을 동시에 나타내려고 했어요. 이를 위해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1910)를 작곡하면서 건반을 누르면 빛이 화면에 투사되는 오르간을 고안했죠. 사진은 이 곡을 연주하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모습이에요. 공연장 내부를 붉은 빛이 채우고 있어요.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은 연주를 하며 음과 색을 동시에 나타내려고 했어요. 이를 위해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1910)를 작곡하면서 건반을 누르면 빛이 화면에 투사되는 오르간을 고안했죠. 사진은 이 곡을 연주하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모습이에요. 공연장 내부를 붉은 빛이 채우고 있어요.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다음 달 2일부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 축제인 '예술의 전당 2022 교향악 축제'가 20일간 열립니다. 여기에 눈에 띄는 작곡가 한 사람이 있는데요.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입니다.

이번 축제에서는 그의 교향곡이 두 곡 연주되는데요. 개막 당일에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교향곡 4번 '법열(法悅)의 시'를, 같은 달 19일에는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교향곡 2번을 연주하죠.

같은 학교 동기생이었던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만큼의 인기는 없지만, 스크랴빈은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개성의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긴 작곡가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창작 기간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변신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죠.

작은 손 가진 피아노 곡의 대가

스크랴빈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그가 한 살 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군인으로 터키 등지에서 근무해 그와 떨어져 지냈죠.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고모를 보고 어린 시절 음악에 눈을 뜬 스크랴빈은 일찍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고, 1888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명 음악가였던 바실리 사포노프, 세르게이 타네예프 등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습니다. 그가 사사한 피아노 교사 니콜라이 즈베레프는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치기도 한 명교사였죠.

우수한 성적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스크랴빈은 재학 시절 여러 곡의 작품을 쓰며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898년부터 1903년까지 모교의 교수로 일하기도 한 그는 1904년 스위스로 이주한 후 생의 마지막까지 유럽과 러시아를 오가며 창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손은 작지만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났어요. 그래서인지 스크랴빈은 피아노 곡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가 20대까지 쓴 피아노 곡들에서는 쇼팽의 영향력이 두드러지는데요. 실제 '프렐류드'(전주곡) '폴로네즈'(폴란드의 민족무용으로부터 발생한 기악곡의 명칭) '마주르카'(폴란드의 민속 춤곡) 등 쇼팽이 쓴 피아노 곡의 이름을 그대로 딴 작품이 많아요. 이 곡들은 시적인 감수성과 아름다운 선율미가 돋보이는 등 쇼팽의 분위기를 빼닮았죠.

곤충 날갯짓 등 공감각적 상징 담아

이처럼 스크랴빈은 낭만파 작곡가의 작풍을 지니고 있었지만, 30대 초반부터 변신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 그는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신비주의 철학에 빠지게 되는데요. 신을 부정하고 인간이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체의 '초인주의'와 '신지학'(명상을 통해 인간이 신적인 지혜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사상 혹은 종교), '조로아스터교'(고대 페르시아 종교) 등을 결합한 독자적인 사상이었죠. 자신을 인류의 구원자이자 신이라 생각하는 독특한 사상입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1909년부터 2년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신지학에 대해 공부하며 강해졌어요. 그러면서 쇼팽의 스타일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신비화음'이라는 독특한 화음을 만듭니다. 음계로 나타내기도 하는 이 화음은 모두 여섯 개의 음(도·레·미·파 샤프·라·시 플랫)으로 구성돼 있는데, 꿈속을 거니는 듯 신비스러운 느낌과 함께 때로는 불안한 기분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작품의 형식에도 변화를 줬는데요. 기존의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피아노 소나타에서 벗어나 한 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를 만들어 자유로운 판타지(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작곡한 악곡)를 표현하는가 하면, '시곡'(poem)이라는 제목의 짧은 피아노 곡으로 자신의 철학이 담긴 시상을 음으로 그려냈습니다.

스크랴빈은 신비주의 사상에 빠진 후 단순히 음악을 작곡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았어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공감각적인 상징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연습곡 작품 번호 8-10은 '비행'을 그리려 한 곡인데요. 이 곡을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는 양팔이 옆으로 최대한 벌려져 날개 모습을 나타내게 돼요. 또 소나타 10번 작품 번호 70과 연습곡 작품 번호 42-3 등에서는 '트릴'(인접한 두 음을 빠르게 오가며 떨 듯이 연주하는 주법)과 '트레몰로'(떠는 음들이 떨어져 있거나 화음으로 된 피아노 주법)를 사용해 곤충의 날갯짓을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조명 형태 갖춘 첫 공연은 1915년

스크랴빈은 연주를 하며 음과 색을 동시에 나타내려고도 시도했습니다. 이를 위해 1910년 관현악·피아노·합창을 위한 작품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를 만들며 '빛의 건반'을 고안했어요. 일종의 '컬러 오르간'으로, 건반을 누르면 그 음이나 화음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빛이 화면에 투사되는 식이었어요. 청중이 소리와 색깔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했던 거예요.

예컨대 C(도)는 빨간색, D(레)는 노란색, F샤프(파 샤프)는 밝은 파랑색, G(솔)는 오렌지색, A(라)는 녹색 등이 그가 생각한 음과 색의 결합이었죠. 작품이 색이 있는 조명의 형태를 갖춰 처음 공연된 것은 1915년 3월 미국 카네기홀에서였습니다. 100여 년 전이었던 20세기 초에 이런 구상을 했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그가 남긴 독창적인 피아노 곡과 관현악 작품들을 들으며, 내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을 떠올리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같은 공연이지만 연주자의 지휘와 연주에 따라 공연장 내부의 색이 바뀌는 장면이에요. 이처럼 작품이 색이 있는 조명의 형태를 갖춰 처음 공연된 것은 1915년 미국 카네기 홀에서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같은 공연이지만 연주자의 지휘와 연주에 따라 공연장 내부의 색이 바뀌는 장면이에요. 이처럼 작품이 색이 있는 조명의 형태를 갖춰 처음 공연된 것은 1915년 미국 카네기 홀에서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스크랴빈의 모습.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스크랴빈의 모습.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스크랴빈이 생각한 음에 따른 색깔.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스크랴빈이 생각한 음에 따른 색깔. /프랑크푸르트방송교향악단유튜브·위키피디아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