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주머니 모양 열매에서 씨앗 터져… 개미가 물어다 여기저기 퍼트린대요

입력 : 2022.03.28 03:30

얼레지

[식물 이야기] 주머니 모양 열매에서 씨앗 터져… 개미가 물어다 여기저기 퍼트린대요
봄이 되면 숲속에 쌓인 눈이 녹고, 빽빽한 녹음이 우거지기 전까지 숲 바닥에는 충분한 빛이 도달합니다. 이 기회를 아주 잘 활용하는 식물이 있는데요. 봄철 짧은 기간에만 볼 수 있는 백합과 식물 '얼레지'입니다.

이 식물은 이른 봄이 되면 자주색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짙은 녹색 잎을 내요. 이 잎은 달걀만 한 크기와 모양으로 땅바닥에 낮게 붙어 자라납니다. 성숙한 얼레지는 마주 보는 잎을 두 장 내는데, 이 사이로 손 한 뼘보다 짧은 길이의 꽃대가 올라와 한 개의 밝은 분홍색 꽃을 피웁니다.

얼레지 꽃<사진>은 여섯 갈래의 꽃잎으로 나뉘어 있어요. 이 꽃잎이 완전히 피면, 뒤로 말리면서 젖혀져 수술과 암술을 활짝 노출해요. 그러면 뒤영벌이나 애호랑나비와 같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줍니다.

수정된 꽃은 주머니 모양의 열매가 되는데요. 열매 안에는 좁쌀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씨앗이 여럿 들어 있어요. 열매가 익으면 주머니가 터지면서 씨앗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 씨앗은 주로 개미가 물어서 널리 옮겨줍니다. 각 씨앗에는 다양한 지방산과 탄화수소로 구성된 엘라이오솜이라는 덩어리가 붙어 있는데, 이 덩어리가 개미들을 유혹하기 때문이에요. 이에 이끌린 개미들은 씨앗을 둥지로 옮기는데요. 씨앗을 옮기는 과정에서 얼레지의 씨앗이 먼 곳까지 퍼질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씨앗이 흩어지면, 좁은 공간에서 영양소를 두고 부모 식물과 경쟁하게 될 확률이 줄어들고 새로운 지역으로 분포를 늘려 갈 수 있답니다.

녹음이 충분히 우거지는 늦은 오월 무렵이 되면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 때문에 숲 바닥까지 빛이 충분히 도달하지 않는데요. 이로 인해 광합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없게 된 얼레지는 이맘때쯤 잎이 시들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영양분을 땅속 비늘줄기에 저장하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내 휴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짧은 줄기에 조직이 줄줄이 붙어 있는 비늘줄기는 땅속에서 영양분을 저장하는 기관이에요. 얼레지는 긴 타원형의 비늘줄기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광합성을 통해 만든 탄수화물을 저장해서 다음 해 봄에 잎을 낼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먹는 양파도 비늘줄기랍니다.

얼레지는 꽃이 아름다워서 원예용으로 재배되기도 하는데요. 식용도 가능합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감자와 고구마가 들어오기 전에 얼레지 뿌리에서 전분을 추출해서 음식 재료로 이용했다고도 하네요.
김한규 위스콘신대 박사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