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는 두 사람… 인생은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죠

입력 : 2022.03.22 03:30

고도를 기다리며

극중 디디랑 고고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1973년). /위키피디아
극중 디디랑 고고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1973년). /위키피디아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1952년 출간된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20세기 후반 서구 연극사의 방향을 돌려놓은 부조리극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에요. 출간 직후 프랑스 파리에서 300회 이상 장기 공연을 했고, 주요 국가의 연극 무대에 올랐어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고요. 사뮈엘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많은 후배 극작가들에게 영향을 줬어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디디'라는 애칭을 가진 떠돌이 블라디미르와 '고고'라고 불리는 에스트라공이에요. 둘은 내내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는 항상 "'고도'를 기다려야지"(디디) "참 그래야지"(고고)로 끝나요. 작품 속에서는 이 고도(Godot)의 정체가 무엇인지 언급되지 않아요. 언제 올지, 온다면 어디로 올지, 심지어 고도의 정체조차도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어요. 그들은 나무 아래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오늘 안 오면 내일" "내일도 안 오면 모레", 심지어 "그 뒤에도 죽" 기다리는,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견뎠어요.

이 작품에는 특별한 인물이 한 명 등장해요. 염소를 친다는 한 소년인데요. 고도의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이죠. 소년의 말은 고작 "고도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정도였어요. 다음 날 다시 찾아온 소년에게 디디가 물어요. "고도씨가 보낸 거지?" "오늘 밤에는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이에 대해 소년은 "네"라고만 답해요. 어느 날 고고는 "여기서 멀리 떠나자"고 하지만, 디디는 이에 내일 다시 와야 할 테니 그럴 순 없다고 말해요. 고도를 기다려야 하니까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두 사람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그 이유조차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이를 통해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나타나는 인생의 부조리를 표현하고자 했죠. 실존주의 철학에서 부조리란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한계 상황을 의미해요. 작품을 통해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함 등을 표현하고자 한 거예요.

두 사람이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기다리는 건 고도라는 이름의 '희망'일까요, 아니면 영원히 오지 않을 헛된 그 무엇일까요? 누구나의 마음속에 '고도'가 있을 거예요. 그것을 희망으로 일구어갈지, 아니면 끝내 오지 않은 허망함인지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에요.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