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한국 야생에서 자라는 유일한 튤립… 장아찌·한약재로 쓰여요

입력 : 2022.03.21 03:30

산자고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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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식물 투기가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터키에서 수입해 정원 식물로 키우던 튤립이 인기를 끌자 사람들이 튤립 구근(球根·알처럼 생긴 뿌리)을 미리 사 놓으려 너도나도 달려들면서 가격이 한 뿌리에 지금 돈으로 3000만원까지 치솟은 거죠. 그런데 갑자기 튤립 열풍이 식자 가격이 폭락해 막대한 손해를 본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이른바 '튤립 파동'으로 부르는 사건입니다.

튤립은 주로 남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자라지만 우리나라에도 매년 3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는 자생 튤립이 있어요. 동아시아 튤립으로 불리는 '산자고(山慈姑·사진)'입니다. 우리나라 야생에서 자라는 유일한 튤립으로 순우리말로는 '까치무릇'이라고 불려요.

이 식물은 햇빛이 잘 드는 중부 이남 풀밭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다른 튤립보다 꽃의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이랍니다. 보통 20㎝ 정도까지 자라는데, 땅속 구근에서 넓은 부추잎을 닮은 길쭉한 잎이 2개 나오고 잎 사이로 줄기 한 대가 올라와 넓은 종(鐘) 모양 꽃을 피워요. 꽃은 대부분 흰색인데, 분홍색도 드물게 볼 수 있어요. 꽃잎 뒷면에는 선명한 자주색 줄이 있답니다.

산자고는 빛과 온도가 생장 조건에 맞지 않으면 꽃잎을 잘 열지 않는 아주 민감한 식물이에요. 그래서 따스한 햇볕을 받으면 꽃잎이 별 모양처럼 펼쳐지고, 해가 가려지거나 밤이 되면 꽃잎을 닫아요.

생육 환경에 따라 꽃 피는 모습도 달라져요. 그늘진 곳에서 자란 산자고는 줄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꽃을 지탱할 힘이 없어 땅에 누운 듯이 자라는 반면,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 것은 줄기가 짧고 단단해서 꽃이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피어요.

산자고 구근은 다른 원예용 튤립과 달리 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먹거나 한약재로 사용했죠. 구근에 약한 독성이 있어 물에 우려 삶거나 구워 먹고 장아찌 재료로 쓴답니다. 그리고 민간에서는 종기 등을 치료하거나 뱀·독충의 독을 제거하는 약재로도 썼고요. 그래서인지 산자고의 학명 '툴리파 에둘리스(Tulipa edulis)'에서 '에둘리스'는 라틴어로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영어로도 먹을 수 있는 튤립이라는 뜻인 '에더블 튤립(Edible tulip)'으로 불린답니다.
김민하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