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2200여 년 전의 신비로운 청동거울… 비결은 '모래 거푸집'
청동기 제작 기술
- ▲ 완주 갈동 토광묘에서 출토된 잔무늬거울(정문경) 중 한 점. 보물로 지정됐어요. /국립전주박물관·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최근 국립전주박물관은 30년 만에 상설 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했어요. 관람객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라북도와 전주의 역사·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는데, 그중 완주 갈동에서 발굴한 거푸집과 잔무늬거울이 눈길을 끌고 있어요. 이 유물들은 2019년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알아볼까요.
일제의 식민 통치에 활용된 고대사
청동은 인류가 만들어 사용한 최초의 금속이에요. 구리와 주석을 녹여서 만들었죠. 철보다 다루기 쉬워 일찍부터 청동으로 검이나 창·도끼·거울·방울 등을 만들었어요.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비파형동검이 나타나는데요. 청동기시대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청동기를 소유하고 사용한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돌이나 나무로 도구를 만들었죠.
청동기를 만들려면 구리와 주석·납 같은 여러 금속 원료의 광석을 캐내서, 그것을 고온으로 가공해 액체 상태로 만들어야 해요. 그다음 틀에 부어 청동기를 만들고 마감 처리를 하는 등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기술이 필요했죠. 이 때문에 청동기를 만들고 소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한반도에 청동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어요. 당시에는 청동기시대라는 명칭 대신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라는 명칭을 썼어요. 이 용어는 본래 '돌과 금속이 함께 사용되는 시기'를 뜻하지만, 우리 역사의 후진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됐어요.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사가 한민족의 자주적 역량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간섭과 압력을 받아 타율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어요. 한반도가 석기시대에 정체돼 있는 동안 중국은 철기를 사용하는 단계로 발전했고, 이런 중국의 침략을 받아 한반도에서 청동기·철기가 동시에 시작됐다는 의미로 '금석병용기'라는 말을 사용한 거죠. 이 용어에는 한국의 역사가 그 시작부터 외세의 침략을 통해 발전해 왔으므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는 것 역시 정당하다는 식민사관의 논리가 담겨 있어요.
처음 발굴된 세형동검 거푸집
일제강점기에도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청동으로 만든 검이나 도끼, 거울이 발견됐어요. 식민사학자들은 이런 청동기들이 한반도에서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한반도에서 청동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요. 바로 청동기를 주조(鑄造)하는 데 사용한 '거푸집'이에요. 거푸집은 용범(鎔範)이라고도 하는데 청동기나 철기 등 금속을 액체처럼 녹인 다음 그것을 부어 도구를 만들기 위한 틀을 말해요.
한반도에는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 47점 남아 있어요. 대부분 우연히 발견되거나 골동상에게 구입한 것들이지요. 그중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된 거푸집이 유명한데, 전남 영암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져요. 그래서 이름도 '전(傳) 영암 출토 거푸집 세트'(영암에서 출토돼 전해져오는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 세트)라고 불리죠. 14점으로 이뤄진 이 거푸집 세트는 청동 검·꺾창·낚싯바늘·끌 등 청동 제품을 총 24점 만들 수 있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이 거푸집은 골동상에게 구입해서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없어요. 고고학 연구에서 하나의 유물이 학술적 가치를 가지려면 출토지가 명확해야 해요. 무덤에서 출토됐는지, 집터나 제사 유적에서 출토됐는지, 또 어떤 유물과 함께 발견됐는지를 알아야만 하는 거죠.
완주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은 한반도 정식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일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동과(銅戈·꺾창)를 만든 거푸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커요. 세형동검은 검의 몸체가 좁고 가늘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한반도와 만주, 일본 규슈 지방에서도 출토되며 '한국식 동검'으로도 불리죠.
한국식 동검 등을 만든 거푸집 2점은 최대 길이 33㎝, 너비 7.9㎝, 두께 3.1㎝예요. 거푸집의 문양이 새겨진 면에는 모두 주조할 때 녹인 청동 용액 때문에 표면이 까맣게 변한 흔적이 남아 있어요. 이 거푸집이 실제 청동기 제작에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거예요.
과학기술이 밝혀낸 거울 제작의 비밀
완주 갈동 유적에서는 2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잔무늬거울 2점이 함께 출토됐어요. 모두 토광묘에서 나왔는데, 완벽한 형태이고 거울 뒷면에 새겨진 문양이 세밀하고 아름다워 보물로 지정됐어요. 잔무늬거울은 매우 세밀한 기하학적 문양을 가진 청동거울로 '정문경'(精文鏡) 또는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으로도 불려요. 한반도에는 지금까지 잔무늬거울이 약 60점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어요. 잔무늬거울 뒷면에 새겨진 문양은 평균 0.3㎜로 머리카락만큼이나 얇답니다.
이처럼 정밀한 무늬를 단단한 거푸집에 어떻게 새겼을까요? 한때 현대 첨단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작품이라는 말이 돌았죠. 하지만 2009년 전(傳) 논산 출토 국보 청동거울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X선 투과 조사' '현미경 조사' 등을 실시하며 비밀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상대적으로 무늬를 새기기 쉬운 '모래 거푸집'(사형·砂型)으로 제작한 거였어요. 입자가 가늘면서 점토질을 가진 모래를 굳힌 다음, 상대적으로 무른 모래 위에 정교한 원이나 삼각형 무늬를 새겨 거푸집을 만들고 그 위에 청동 용액을 부어 물건을 완성하는 방법이에요.
잔무늬거울은 맨눈으로 볼 때 완벽해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몇 군데서 작은 실수로 생긴 흠집이 확인됐다고 해요. 그 사이에 가는 모래 알갱이들이 남아 있었죠. 이 모래 알갱이가 주조 방법을 알려주는 힌트가 됐어요. 청동 용액을 부어 주조 작업이 끝나면 완성된 거울과 거푸집을 분리하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 거푸집의 모래 알갱이 일부가 남겨진 거예요.
[제사장의 신성한 물건]
청동기시대의 청동 검·청동거울·청동방울은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은 아니었어요. 주로 사냥·고기잡이의 성공을 기원하는 등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된 것으로 생각돼요. 제사장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였고, 병을 고치거나 죽은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맡고 있었어요.
제사장들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청동기'였어요. 잔무늬거울을 가슴에 달고 청동방울을 흔들며 하늘과 소통하는 제사장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 ▲ 같은 곳에서 출토된 거푸집의 모습. ‘한국식 동검’으로도 불리는 ‘세형동검’을 만들기 위해 사용됐어요. /국립전주박물관·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 ▲ 거푸집을 사용해서 만든 청동검과 꺾창 모습. /국립전주박물관·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 ▲ 논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청동거울 파편에는 모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사진은 단면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국립전주박물관·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