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동아시아에서는 3000여 전부터 옻칠… 신라 시대엔 칠기 관청까지 있었대요
입력 : 2022.03.08 03:30
칠기(漆器)
- ▲ /위키피디아
동아시아에서 옻나무가 가구나 그릇의 도료로 사용된 흔적은 3000여 년 전부터 나타납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의 유물 중 칠기가 발견된 거예요.
이후 칠기는 한반도로 전파됩니다. 한반도에서 칠기는 중국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어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무렵 유물로 추정되는 칠기가 출토됐는데요. 공예품 위에 직물을 덮고 여러 차례 옻칠을 해서 만드는 낙랑 유적의 중국 칠기와 달리, 나무 표면에 바로 옻칠을 한 모습이었어요. 중국과 다른 한반도의 독자적인 칠기 문화를 보여주는 셈이지요.
그러면서 칠기는 한반도의 주요 공예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신라 시대에는 '칠전'(漆典)이라는 부서를 두고 옻나무를 심으며 국가에서 직접 칠기를 제작했어요. 신라 말기에는 중국 당나라에서 새로운 방식의 칠기 문화가 들어오는데요. 조개껍데기 등으로 화려하게 표면을 장식하는 '나전칠기'(螺鈿漆器)랍니다. 나전칠기는 중국에서 처음 유입됐지만, 그 문화는 한반도에서 꽃을 피웠어요. 당시 중국에서는 나전칠기 대신 여러 겹의 옻칠로 층을 만들고, 층을 조각해 문양을 만드는 '조칠기'(彫漆器)가 유행했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나전칠기는 외국과의 외교에서 조공품이나 선물로 자주 활용됐어요. 고려의 나전칠기를 받은 송나라 관료가 '옻칠 기술은 중국이 더 정교하지만, 나전 기술은 고려가 매우 정밀하고 훌륭하다'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조선시대 나전칠기<사진>는 약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고려에서는 장식에 연꽃 등 불교적 색채를 주로 표현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산이나 학 등 자연물이나 사군자 등 유교적 장식을 주로 쓴 거예요.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은 당나라 시절 나전칠기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헤이안 시대(794~1185)에 접어들며 일본 특유의 칠기 문화인 마키에(蒔繪)가 발전하게 됐어요. 옻칠을 한 칠기 위에 붓 등을 이용해 금이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형태인데,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활용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