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세계에 사랑과 평화 호소했죠
우크라이나의 연주가들
20세기 모스크바 중심으로 활동
세계 콩쿠르 무대에 이름 알려
소련도 공식 인정한 피아니스트도
- ▲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는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위키피디아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 소식에 많은 이가 안타깝고 슬퍼합니다. 특히 러시아군의 집중 공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제2의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우연히 촬영된 음악 영상이 슬픔을 더해줍니다. 지난달 24일 현장 취재 중이던 워싱턴포스트(WP)의 촬영기자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공습경보가 울려 퍼진 하르키우의 한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를 치던 어느 소년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어요. 이 소년은 침착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학교 가는 길'이라는 곡을 연주했다고 해요.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아이가 찾는 것이 위안인지, 희망인지는 몰라도 음악은 경계를 뛰어넘는 마음을 전한다"는 등 반응이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졌어요.
20세기 음악가 중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명연주자가 많습니다. 지금부터 설명할 네 연주자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 클래식계에 널리 알린 우크라이나의 인물들입니다.
6세 때 음악회 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는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 때 최초의 음악회를 열 정도로 천재성이 남달랐죠. 그의 이름이 세계 무대에 알려진 것은 1937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전신인 제1회 이자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였죠. 그 후 오이스트라흐는 유명 작곡가 프로코피예프 등의 작품을 함께 작업하며 동구권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를 굳혔죠. 1934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일하며 라트비아 출신의 기돈 크레머, 러시아의 올레그 카간 등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길러내기도 했습니다.
오이스트라흐는 러시아의 작품은 물론이고 자신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레퍼토리(주로 연주하는 곡들) 대부분을 녹음으로 남겼어요. 그중에서도 명콤비로 활약했던 레프 오보린과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90세로 사망한 그의 아들 이고리도 화려한 활동을 펼쳤던 바이올리니스트였죠. 이 바이올리니스트 부자를 기리기 위해 1993년 발견된 소행성에 '42516 오이스트라흐'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답니다.
파가니니 해석의 달인
오이스트라흐보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났지만 그와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였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트 코간(1924~1982)도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진작가였는데, 아들이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은 그가 10세 때 모스크바로 이주해 모스크바 음악원 등에서 공부시켰죠.
1941년 17세 나이에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연주하며 데뷔했고, 1951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모스크바와 이탈리아 시에나 등에서 연주를 가르치기도 했죠. 흔들리지 않는 강렬하고 매력적인 소리와 탁월한 기교를 구사했던 코간의 레퍼토리는 무척 다양했는데, 그중에서도 코간은 최고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파가니니의 해석에 최고라는 평을 받는답니다.
난해한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이나 초연
지난 세기 전설로 남은 피아니스트 가운데 첫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는 우크라이나 중부 지토미르에서 태어난 음악가입니다. 독일계 혈통의 음악가 아버지를 둔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혔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뒤늦게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어요. 탁월한 음색 조절 능력과 뛰어난 기교를 지니고 있었던 그는 작곡가의 창작 의도에 충실한 자세로 피아노 연주에 임했죠.
리흐테르는 아무리 어려운 악보라도 단시간에 익힐 수 있는 능력자였어요. 연주하기 까다롭고 음악적인 해석도 어려워 난곡(難曲)으로 유명한 러시아 출신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를 세 곡이나 세계에서 처음 연주한 기록의 소유자입니다. 리흐테르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인정한 프로코피예프가 곡을 발표하며 그에게 처음 연주해주길 부탁한 거예요.
은둔자적인 성향이 있었던 리흐테르는 대중의 인기와는 상관없이 말년까지 자신이 연주하고자 하는 곡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연주했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기록도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그럼에도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비롯해 피아노 음악팬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연주자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소련이 인정한 첫 번째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와 라이벌로 불렸던 피아니스트 에밀 힐렐스(1916~1985) 역시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입니다. 1933년 소련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1936년 빈 음악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2위, 1938년 이자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어요. 1955년 소련 정부가 공식적으로 '소련의 피아니스트'라고 서방 세계에 내세운 첫 번째 피아니스트가 됐습니다.
비교적 작은 체구였지만 강력한 힘과 단단한 터치로 '강철의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들었던 힐렐스는 모차르트부터 라흐마니노프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레퍼토리를 가졌던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죠. 그의 음반 가운데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것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인데요. 32개의 소나타 전집을 녹음하던 중 다섯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많은 애호가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에는 국적도, 국경도 존재하지 않죠. 아름다운 피아노·바이올린 선율로 세계에 평화와 사랑을 전한 우크라이나 네 음악가의 연주를 감상하며 하루빨리 전쟁과 폭력이 멈추기를 기원해봅니다.
[차이콥스키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우크라이나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이 곡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러시아 국가 대신 연주되기도 했는데요. 제1악장의 주제부에서는 피아노가 토속적인 향토 음악의 선율을 연주하는데, 우크라이나 민요에서 멜로디 일부를 빌려온 거예요. 제3악장의 제1주제도 우크라이나 민요에 기반을 두고 있답니다.
차이콥스키의 아버지인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우크라이나계 사람이에요. 여동생은 결혼 후 우크라이나에서 살았죠. 그는 종종 여동생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그의 일부 작품은 우크라이나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교향곡 2번'도 여동생이 있던 우크라이나 카만카에서 작곡했어요. 그의 작품 속 3개 주제를 우크라이나 민요에서 따온 것이죠.
- ▲ 지난 세기 전설로 남은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위키피디아
- ▲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공습경보가 울려 퍼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한 호텔 로비에서 어느 소년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 /워싱턴포스트인스타그램
- ▲ 파가니니 해석의 달인으로 손꼽히는 우크라이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트 코간.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