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음악·춤 아우르는 민속 문화의 뿌리… 최신 기술과 만났죠

입력 : 2022.02.28 03:30

전통굿의 현대화

①지난 16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는 한국 전통 예술인 굿과 미디어 영상을 결합한 공연‘비손’이 올랐어요. 이 공연에서는 대중매체를 예술에 도입한 미디어아트, 일렉트로닉 음악(EDM)과 굿을 결합한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②공연에서 18세 정유엽군의 넋을 위로하는 모습. 2년 전 정군은 코로나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6일 만에 숨졌습니다. ③류경화 연주자가 비손 무대에서 철현금(鐵絃琴)을 연주하는 모습. /케이아츠크리에이티브
①지난 16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는 한국 전통 예술인 굿과 미디어 영상을 결합한 공연‘비손’이 올랐어요. 이 공연에서는 대중매체를 예술에 도입한 미디어아트, 일렉트로닉 음악(EDM)과 굿을 결합한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②공연에서 18세 정유엽군의 넋을 위로하는 모습. 2년 전 정군은 코로나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6일 만에 숨졌습니다. ③류경화 연주자가 비손 무대에서 철현금(鐵絃琴)을 연주하는 모습. /케이아츠크리에이티브
"엄마가 김밥 장사 하느라, 간식을 김밥만 줬지. 마지막까지 너에게 줄 것이 김밥밖에 없어. 배고프지 않게 다 먹고 가. 엄마가 길치잖아. 나중에 엄마가 너에게 갈 때 꼭 마중 나와야 한다. 알았지? 유엽아 사랑해!"

지난 16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는 한국 전통 예술인 굿과 미디어 영상을 결합한 공연 '비손'이 올랐어요. '비손'은 두 손을 맞대어 빈다는 의미인데요. 무당이 굿을 하며 신에게 인간의 염원을 기원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해요. 2년 전인 2020년 3월, 40도 넘는 고열에 시달리던 18세 정유엽군은 코로나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입원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치료 대신 코로나 검사만 14번 받다가 6일 만에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공연에서는 실제 정군의 부모가 무대에 올랐어요.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읽는 엄마 목소리가 공연장을 채웠습니다.

무대에서 코로나 아픔 달래

이번 공연은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전 세계 사망자 577만명을 기억하고 그 영혼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했어요. 정군을 비롯해 코로나로 상처 입은 전 세계인의 아픔과 영혼을 굿으로 달래며 희망의 메시지가 널리 퍼져 나가길 염원한 거예요. 굿은 무당이 신에게 바치는 제의(祭儀)를 의미해요. 굿상을 차려 제물을 신에게 바치고 춤과 노래로 인간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거죠.

굿을 소재로 삼아 무대에 올릴 때는 모든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제(祭)의 상징적 장면과 음악적 대목이 돋보이는 부분을 뽑아내 새롭게 구성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공연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표하는 굿 형식인 '동해안 별신굿'과 '진도 씻김굿'의 소리를 한 무대에서 보여주기도 했어요. 호남 지방의 무당들이 지전(종이돈)을 사방으로 휘저으며 추는 '지전춤'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춤을 통해 망자의 원한을 풀고 망자가 극락에 가기를 기원하는 의식이죠.

다양한 현대 기술과 결합하기도

최근엔 굿과 다른 요소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도 이어지고 있어요. 이 공연에서는 대중매체를 예술에 도입한 미디어아트, 일렉트로닉 음악(EDM)과 굿을 결합한 모습이 돋보였는데요. 철현금(鐵絃琴) 선율에 따라 무대 배경 영상이 움직이는 시각적 효과를 줬어요. 무대에서 연주하는 선율이 실시간으로 프로그램에 입력되면서 음악이 끊길 땐 화면에서 연기가 수직으로 피어오르고 음악이 진행될 땐 강약(强弱)에 따라 연기가 바람에 흔들리듯 움직였어요. 전통과 기술의 색다른 만남을 시도한 거예요.

굿을 무대화하려는 시도는 비손 공연 외에도 다양하게 이뤄져요. 지난 1월에는 댄스시어터 창(倡)이 무용으로 해석한 '굿-사도'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어요.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 이야기를 굿으로 풀어낸 내용이에요. 칼춤·현대서커스·무용 등을 결합하고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를 더했답니다.

음악·춤·복식 담은 전통 예술의 근간

우리나라의 굿은 음악·춤·복식·무가(巫歌)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우리 전통 예술의 근간이에요. 민속 음악의 바탕에는 무속 음악이 자리 잡고 있고, 민속 무용의 춤사위가 무당춤에서 유래하기도 했죠. 판소리의 기원이 무당이 부르는 이야기 형식의 노래 '서사무가'라는 설도 있고요.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뒤섞인 비일상적 공간인 굿판을 통해 현실의 제약을 잊고, 위안을 얻으려 했답니다.

굿의 역사는 몇 가지 기록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요. 원시 부족국가 시대부터 삼국이 정립하기 전에 해당하는 상고 시대에서 그 연원을 찾죠. 굿은 의뢰하는 인간과 굿을 받는 신,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하는 무당이 있어야 진행되기 때문에 신과 인간이 만나는 소통의 장으로 생각돼 왔어요. 그래서 특히 신을 받들고 제사를 지내는 일이 정치의 중심이었던 제정 일치 사회에서는 무당의 권력이 막강했어요.

이후 굿이 전승되는 모습을 다양한 문헌과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고려 시대 문신 이규보는 작품집 '동국이상국집'의 '노무' 편에서 개성에서 추방당하는 무당의 모습을 보고 시를 지었어요. 신윤복의 풍속도 '무녀신무'는 무당이 여염집 마당에서 부채를 펼쳐 들고 신들린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을 그렸죠. 조선 시대 무당에 대해 기록한 '무당 내력'을 통해 굿의 양상을 확인할 수도 있답니다.

소중한 문화 자산인 굿은 오늘날 다양한 콘텐츠 자산으로도 활용되고 있어요. 인기 TV 드라마였던 '해를 품은 달'에서는 세자빈으로 간택됐다가 무녀가 된 주인공 이야기가 펼쳐지고, 죽은 영혼을 보내는 서울 지역의 진오기굿에서 행한 서사 무가 '바리공주'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했어요. 이제 굿은 무속 신앙을 넘어 한국의 오랜 문화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동해안 별신굿과 진도 씻김굿]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표하는 '동해안 별신굿'과 '진도 씻김굿'은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어요. 동해안 별신굿은 어민들의 풍어와 안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평안과 장수를 비는 마을 굿이죠. 대개 음력 3~5월, 9~10월 사이에 열어요.전라남도 진도 지역에서 전승되는 진도 씻김굿은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굿이에요. 망자를 상징하는 신체 모형을 만들고, 이승에서 맺힌 원한이나 아쉬움을 씻어줘 편안하게 다음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빌죠. 진도 씻김굿은 춤과 음악·소리·사설 등 모든 과정이 음악·무용·민속학·문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아요. 이처럼 절제되고 단아한 의식은 예술성이 높은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