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주전자·잔받침… 찌꺼기 버리는 그릇까지 최고급 청자죠
고려시대 찻잔과 술잔
- ▲ 청자 국화무늬 꽃모양 잔과 잔받침이에요. 잔받침 위에 잔이 올려져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이 오는 3월 20일까지 '고려음(高麗飮), 청자에 담긴 차와 술 문화'라는 특별전을 열어요. 청자라고 하면 흔히 유리 진열장 너머로만 바라보는 값비싼 문화재를 떠올릴 수 있는데, 청자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전시라고 해요. 청자로 만든 찻잔과 고려 사람들의 음식 문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차와 차 도구의 전래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고려청자'를 꼽는 사람이 많아요. 고려청자가 당시 송나라를 비롯한 외국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고려 시대 문화재 중 가장 많은 수량이 남아 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청자는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실용성도 두루 갖추고 있어요. 고려 사람들은 주전자나 대접 같은 그릇뿐 아니라 향로나 베개·의자·기와·화분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을 청자로 만들었어요. 특히 고려청자 중에는 차와 관련된 유물이 많은데요. 고려 시대에는 귀족이나 승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차를 마시고 즐기는 것이 생활 풍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 때 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828년 흥덕왕 때 당나라에 갔던 사신이 차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지리산에서 재배한 뒤 차 문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해요. 다만 백제의 도읍인 서울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에서 다기(茶器)로 생각되는 돌절구나 중국제 청자가 발견돼 삼국시대부터 차 문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어요. 통일신라 시대 왕궁 정원이었던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흙으로 만든 작은 잔이 출토됐는데 붓으로 '다(茶)'라는 글자를 쓴 찻잔도 남아 있어요.
신라에 처음 차를 소개한 사람은 승려들이었어요. 통일신라 말기에는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禪宗·불교의 한 종파)이 유행했는데 이때 승려들은 맑은 정신을 갖게 한다며 차를 즐겨 마셨어요. 고려가 건국되고 선종의 교세가 확산되면서 차 문화가 비로소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됐죠.
차 마시며 교류하는 문화 공간
고려 시대에는 차와 술, 과일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기관인 '다방'(茶房)이 있었어요.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담당하는 거예요. 고려의 가장 중요한 불교 행사인 연등회나 팔관회는 물론 외국 사신이 방문할 때나 임금이 왕궁 밖을 행차할 때도 다방에서 격식과 절차에 맞춰 차례(茶禮)를 준비했죠. 찻집을 일컫는 '다방'이나 차를 올리는 제사를 뜻하는 '차례'라는 말은 모두 여기에서 유래했어요. 고려는 차를 마시고 즐겼던 차의 나라였고, 고려 사람들에게 '차 한잔'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은 오늘날 커피를 대접하는 것만큼이나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대요.
고려 시대에는 차를 임금의 권위를 나타내는 귀중한 물품이자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으로도 인식했어요. 그래서 왕실에서는 공신이나 승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차와 차 도구를 하사했어요. 고려는 차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차를 재배하는 특수행정구역으로 다소(茶所)를 뒀는데요. 차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인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전역에서 생산됐는데 지리산 주변에서 가장 활발하게 재배됐다고 해요.
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도 개경에는 '다점'(茶店)이 생겼어요. 다점은 차를 마시는 일종의 찻집으로, 사람들은 다점에서 돈이나 삼베를 주고 차를 사서 마셨어요. 귀족뿐 아니라 여유가 있는 일반인도 다점에서 차를 즐기며 교류했는데, 개경에는 관에서 운영하던 다점과 개인이 운영하던 다점이 함께 있었어요.
고려 중기 문인 임춘이 지은 '다점에서 낮잠을 자다가'라는 시가 남아 있는데, 봄날 다점 누각의 평상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난 기분을 읊고 있어요. 이것을 보면 고려 시대 다점은 차도 마시고 낮잠도 한숨 자며 쉴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 공간이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차에 기품을 더한 고려청자
고려 시대 차는 왕실과 귀족사회의 중요한 문화로도 자리 잡았어요. 그러면서 차를 마시는 데 어울릴 만한 잔·잔받침·주전자 등을 비롯해 차를 만들어 마시는 데 필요한 다양한 차 도구까지 청자로 만들어졌는데요. 차 찌꺼기를 버리는 데 쓰는 타호(唾壺) 같은 것도 모두 최고급 청자로 만들었어요.
고려시대에는 찻잔에 차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차솔로 휘저어 거품을 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이 유행했는데요. 오늘날 거품을 내어 마시는 말차(沫茶)와 비슷하답니다.
청자로 만든 찻잔은 사발처럼 크고 넓적했어요. 찻잔에는 연꽃이나 넝쿨, 구름이나 학 무늬가 새겨진 경우가 많았죠. 주전자는 주로 참외 모양에 승반이라 부르는 받침이 달려있었는데요. 주전자의 뚜껑이나 손잡이 하나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담았어요. 중국에서 차 문화를 들여왔지만 자신들의 안목과 미의식을 반영해 고려만의 아름다운 청자 찻그릇과 도구들을 완성했어요.
[금·옥에 버금갔던 소주]
고려 시대에는 차와 함께 술 문화도 발전했어요. 왕실에서 술은 공식적인 제사나 잔치, 사신 접대, 하사품으로 사용됐고, 양온서(良醞署나 사온서(司醞署)와 같은 부서를 두고 별도로 관리했죠. 전반기에는 곡식으로 빚은 발효주를 주로 마셨고, 원 간섭기 이후에는 증류주가 유행했어요. 13세기 후반에는 원나라에서 포도주가 들어오기도 했대요. 1374년에는 소주와 금·옥으로 만든 그릇 등의 사치품을 금하는 명령이 내려졌는데, 당시 소주가 금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에 버금가는 사치스러운 고급 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이 시기에는 술을 따뜻하게 데워서 마셨어요. 주전자의 받침인 승반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그 안에 주전자를 담그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알코올 성분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죠.
- ▲ 청자다연(왼쪽)과 봉. 차를 곱게 가는 데 사용한 도구예요.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 ▲ 차 찌꺼기를 버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타호(唾壺)’.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 ▲ 청자 꽃모양 잔(왼쪽)과 잔받침의 모습.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 ▲ 머리가 용, 몸통이 물고기의 모습을 한 청자 어룡(魚龍) 모양 주전자예요.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