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고인돌·피라미드·만리장성 등 세계 1000여곳 등재됐죠
입력 : 2022.02.09 03:30
유네스코 세계유산
- ▲ ①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에요. ②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앙코르와트 사원. ③유네스코의 로고는 파르테논 신전과 닮은 모양이에요. 균형·화합을 상징하죠. ④유네스코가 통째로 옮긴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의 조각상. /위키피디아
사도광산은 1년 이상의 심사를 거쳐 내년도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거예요. 유네스코 위원국인 일본·아르헨티나·벨기에 등 21국이 투표에 참여하지요. 유네스코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기에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는 걸까요?
1946년 발족한 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는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UNESCO)의 약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44국 대표가 영국 런던에 모여 '유네스코 헌장'을 채택했고, 1946년 미국·영국·프랑스 등 20국이 비준하면서 발족했어요.
헌장에 따르면, 유네스코의 목적은 교육·과학·문화 분야의 전 세계적인 협력으로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기여하는 거예요. 따라서 문맹 퇴치나 환경 문제 연구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물·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인류의 공동 재산으로 보존하고 있죠. 현재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중국의 만리장성 등 1000여 개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돼 있어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부동산, 즉 옮길 수 없는 자산이어야 해요. 박물관에 있는 회화 작품이나 공예품 등은 대상이 될 수 없죠.
유네스코의 공식 로고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닮은 모양인데요.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1호가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최초 등재된 세계유산은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에요. 심지어 한 곳이 아닌 12곳이죠.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폴란드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 등이 1978년에 처음으로 지정됐어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1987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답니다. 따라서 파르테논 신전이 단일하게 등재된 것이 아니에요.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중심지에 있는 언덕인데요. 신전·극장 등 고대 그리스의 문화·예술과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건물들이 있어요.
이 중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 파르테논 신전이에요. 아테네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인 아테나를 모시는 곳이죠. 기원전 5세기 무렵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세워졌답니다. 거대한 백색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인 파르테논 신전은 절제된 균형미로 유명해요. 아마두 마타 음보우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로고의 모티브가 된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어요. "파르테논 신전은 우리 기구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균형과 화합을 추구하는 훌륭한 상징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첫 번째 세계유산은 아니지만,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대표하는 문화재인 거예요.
8년간 50여 국가에서 돈 모금해 유적 옮겨
유네스코는 파괴 위험에 처한 유산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왔어요. 그중에서도 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을 통째로 옮긴 사례가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혀요.
이집트와 수단의 경계에는 누비아라는 지역이 있는데요. 이곳에는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세워진 필레 신전이 있어요. 이 유적들은 1979년 '아부심벨에서 필레까지'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죠.
그런데 유네스코와 아부심벨 신전의 인연은 그보다 앞선 1964년 시작됐어요. 이집트 정부는 나일강의 고질적인 범람을 막기 위해 1960년부터 나일강 중류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높이 111m의 댐이 완공돼 강물을 막으면, 거대한 호수가 생겨 누비아 지역의 고고학적 유적지가 잠겨버리는 참사를 피할 수 없었어요.
이때 유네스코가 나서서 국제적인 유적 구제 캠페인을 벌여요. 1964년부터 8년간 세계 50여 국가로부터 3600만달러(약 432억원)를 모금한 거예요. 그리고 전 세계의 기술자가 협력해 누비아의 여러 유적을 옮깁니다. 그중 아부심벨 신전 이전 공사가 가장 규모가 컸어요. 신전에 1만7000개의 구멍을 뚫고, 1000여 개의 조각으로 잘라 옮긴 뒤 재조립을 했는데요. 4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아부심벨 신전은 원래 위치보다 60여m 높은 곳으로 이전됐고,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답니다.
위험유산 지정해 특별 관리도
유네스코는 내전이나 자연재해, 무분별한 관광 산업으로 파괴될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을 따로 '위험유산'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합니다. 50여 곳이 위험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이 중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는 캄보디아 크메르 왕조(9~15세기) 시대의 수도였는데요. 산림 지역을 포함해 400㎢의 넓이에 수십 개의 사원과 왕궁 등이 남아있어요. 동남아시아 최대의 역사 유적 중 하나죠.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앙코르 안에 건립된 사원이에요. 앙코르 왕조 전성기를 이룬 수리야바르만 2세가 자신이 죽은 뒤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신과 합일하겠다며 세웠죠.
앙코르와트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도굴·약탈·파괴의 수모를 겪었어요. 특히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 세력 '크메르루주'가 1975년부터 수도 프놈펜을 장악해 캄보디아를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많이 훼손됐는데요.
이들은 베트남과 지속적인 군사적 충돌을 빚다가 1977년에는 전쟁을 일으켜요. 당시 베트남군과 크메르루주군은 번갈아 가며 앙코르와트를 거점으로 삼았어요. 이 과정에서 불상은 파괴되고 주요 유물들이 도난당했어요. 앙코르와트의 70% 이상은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였죠.
유네스코는 1992년 앙코르와트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위험유산으로 지정한 뒤 복원 사업을 진행했어요. 그 결과 2004년에 위험유산 목록에서 제외됐지만, 복구 사업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인돌 있어요
거석(巨石)문화의 대표인 고인돌은 전 세계에 약 6만 기가 퍼져 있는 것으로 추정돼요. 그런데 그중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거석문화는 거대한 돌로 구조물을 만들어 숭배하거나 무덤으로 이용하는 문화입니다.
왜 이렇게 한반도에 고인돌이 많이 남아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고인돌은 4만여 기인데요. 주로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어요. 특히 고인돌이 많이 집중돼 있는 고창·화순·강화 유적은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답니다. 사적 제137호인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높이 2.6m에 덮개돌 6.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