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농사짓고 전쟁서 대량 학살… 인간사회 못지않죠
입력 : 2022.01.18 03:30
초(超)유기체 개미
- ▲ /사진=위키피디아, 그래픽=안병현
개미나 꿀벌 무리를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자세히 관찰하면 이들의 삶은 인간 사회를 보는 것 같아요. 개미는 대표적인 '사회적 곤충'으로 꼽혀요. 일개미·병정개미·수개미 등으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요. 화학 물질인 페로몬을 이용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죠.
무리와 떨어진 개미는 오래 살지 못해요. 개미의 생존은 무리의 생존에 달린 거지요.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커다란 기계 장치의 부품과 같아요. 그래서 개미 무리를 멀찍이 관찰하면, 무리 전체가 마치 한 마리 동물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이렇게 많은 개체로 이뤄진 무리가 한 마리 동물처럼 행동하는 생명체를 '초유기체'(super-organism) '초개체'(super-individual)라고 불러요.
초유기체의 대명사 개미
개미는 대표적인 초유기체예요.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1929~2021)은 평생 개미를 연구하며 얻은 지식을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데 적용했죠. 이를 토대로 '인간 본성에 대하여'(1978) '초유기체'(2009) 같은 여러 책을 썼어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사는 '군대개미'는 초유기체다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줘요. 군대개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미와 달리 한곳에 집을 짓고 살지 않아요. 이름처럼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죠. 이들은 집이 필요할 때면 서로 다리를 붙잡고 버텨서 원통이나 타원형 덩어리를 만들어요. 단단히 뭉친 개미가 곧 임시 집이 되는 셈이지요. 이곳에서 몇 주간 머무르다 집을 옮기는 거예요. 덩어리 한가운데에는 여왕개미와 애벌레가 있어요.
덩어리로 뭉쳐 있던 개미들은 낮이 되면 떨어져 나와 한 방향으로 전진하며 사냥을 해요. 군대개미 무리와 마주치는 작은 곤충이나 절지동물은 갈기갈기 찢겨서 먹잇감이 되죠. 어느 한쪽으로 사냥을 떠나면, 다음 날에는 다른 방향으로 사냥을 나갑니다. 이런 식으로 몇 주간 임시 집 근처를 초토화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같은 일을 반복해요.
사냥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에요. 사냥 역할을 맡은 개미가 먹이를 잡으면, 비교적 큰 개미로 이뤄진 수송대가 먹이를 집 근처로 날라요. 어느 정도 집에 가까워지면, 이곳에서부터는 작은 개미가 달라붙어 먹이를 집까지 옮기죠. 또 사냥하는 개미 주변에는 방어 역할을 맡는 병정개미가 있어요. 군대개미 중에서도 '에키톤 부르켈리'라는 종은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져 사냥해요. 마치 누군가 지휘하는 것처럼 척척 일을 해내죠. 개미를 세포에 비유한다면, 개미 무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영리한 전술 선보이며 도둑질도 해요
농사를 짓도록 진화한 개미도 있어요. 이런 개미의 종을 통틀어 '잎꾼개미'라고 불러요. 이들은 싱싱한 나뭇잎을 잘게 찢어서 집으로 가져와요. 그리고 이 잎 위에 곰팡이를 키워서 먹는답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버섯을 키워서 먹는 셈이에요. 이들 역시 크기가 다양한 일개미가 제각기 다른 역할을 맡으며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요.
영역과 먹이를 놓고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이나 영역 생활을 하는 동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때때로 개미는 감탄할 만한 영리한 전술을 선보여요.
미국에 서식하는 '포렐리우스 프루이노수스'라는 개미는 꿀단지개미의 먹잇감을 훔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여요. 우선 꿀단지개미 집 입구에 모여 화학물질로 공격을 합니다. 그럼 꿀단지개미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해요. 그렇게 집 안에 가둬 놓은 뒤 주변을 돌아다니며 여유 있게 사냥터의 먹이를 훔쳐가죠. 서식지가 유럽인 열마디개미는 자신의 집에서 다른 무리의 집을 향해 땅굴을 파요. 마침내 다른 무리의 집에 도달하면 동료들을 이끌고 쳐들어가 애벌레를 훔쳐와서 먹어버리죠.
개미 무리에게 사람처럼 성격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2015년 프랑스 투르대학교의 연구진은 기존에 살던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개미 무리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는데요. 이를 위해 깔때기개미의 여왕개미 27마리를 잡아와 실험실에서 일개미를 낳도록 했죠. 연구진은 개미 무리가 먹이를 찾는 방법과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모습, 실험실의 온도를 높이며 고온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살폈어요.
그 결과 각 개미 무리의 성격이 서로 달랐어요. 어떤 개미 무리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먹이를 찾아 나섰고, 또 다른 무리는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며 가능한 한 위험을 피하려 했지요. 사람이나 동물의 성격이 각기 다른 것처럼 개미 무리의 성격도 달랐던 거예요.
사람처럼 스스로 희생해요
개미나 다른 사회적 동물의 행동은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행동 특성을 갖게 됐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을 '사회생물학'이라고 해요.
사회적 곤충에게서는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공격성, 다른 사람을 돕는 희생정신 모두를 찾아볼 수 있어요. 예컨대 개미 무리가 일으키는 전쟁은 인간이 벌이는 전쟁처럼 잔혹하죠. 적의 병력을 파악해 집으로 돌아가 알리는 연락병 개미도 있고요, 하루 종일 전쟁을 벌여 서로의 목을 자르며 대량 학살을 하기도 한답니다.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꿀벌은 무리를 방어하기 위해 적에게 침을 쏴요. 하지만 이 침을 적에게 박으면 침과 함께 내장까지 뽑히면서 목숨을 잃게 되죠. 아프리카 흰개미는 무리를 지키기 위해 적을 공격할 때 입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화학물질 때문에 자신도 죽음을 맞아요. 이렇게 무리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는 모습은 사회적 곤충을 제외하면 인간에게서만 찾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