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추운 지역 살수록 몸집 커… 열 덜 뺏기려 진화했어요

입력 : 2022.01.11 03:30

베르크만 법칙과 앨런 법칙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호랑이는 고양잇과에 속하는 포유류 중 가장 큰 동물이죠. 현재까지 발견된 호랑이는 모두 '판테라 티그리스(Panthera tigris)'라는 학명을 가진 하나의 종(種)이에요. 사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아종(亞種)'으로 나뉘지만 유전자가 조금 다를 뿐 다른 종으로 분류할 만큼의 큰 차이는 없다는 뜻이죠.

호랑이의 아종은 몸집이나 줄무늬 같은 외형적 특징으로 구분돼요. 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학자마다 분류에 차이가 있었죠. 그러다 2018년 중국 베이징대 연구팀이 대표성을 갖는 호랑이 32개체의 유전체(DNA)를 분석해 호랑이의 아종은 총 9개이고, 그중 3개 아종은 이미 멸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호랑이들은 서식지별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따뜻한 지역 호랑이가 더 작아요

연구팀은 각 아종의 전체 유전자를 비교했어요. 그 결과 대부분 11만 년 전에 살았던 호랑이가 조상이라는 점을 밝혀냈어요. 모두 친척 관계라는 거예요. 하지만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몸집 크기나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일부 유전자 변이에 차이가 있었어요. 각 서식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하고, 진화했기 때문이에요.

호랑이는 서식지가 추울수록 체격이 크고 따듯할수록 체구가 작았어요. 예컨대 가장 추운 지역에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수컷을 기준으로 몸길이가 평균 2.7~3.3m이고, 몸무게 평균은 180~370㎏으로 다른 아종에 비해 몸집이 컸어요. 반면 따뜻한 남쪽 지역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사는 수마트라호랑이 수컷의 평균 몸길이는 2.5m에 평균 몸무게는 75~140㎏이었죠.

그런데 이런 경향은 호랑이뿐 아니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다른 동물에서도 관찰됐어요. 중국 연구팀의 호랑이 DNA 분석 결과에 앞서 이를 발견해 낸 학자가 있지요.

1847년 독일의 생물학자였던 카를 베르크만(1814~1865)은 "같거나 가까운 종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일수록 체구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어요. '베르크만의 법칙'(Bergmann's Rule)이에요. 추운 지역에 사는 동물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열 손실을 최대한 줄여야 해요. 열 발산은 몸의 표면에서 일어나는데, 표면적이 작을수록 열 발산량은 줄어들게 되지요. 이 법칙을 적용하면 시베리아 호랑이의 체구가 큰 까닭을 알 수 있어요. 동물의 체격이 커지면 몸 전체 표면적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몸의 부피 대비 표면적 비율은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예컨대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면체 변의 길이가 두 배 늘어 2㎝가 된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럼 부피는 여덟 배가 느는 반면 총 표면적은 처음 정육면체의 네 배밖에 늘지 않는 것이죠. 따라서 체구를 키울수록 체온 유지에 필요한 열을 덜 빼앗겨서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죠.

이 법칙은 펭귄에게도 적용돼요. 영하 19도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은 몸길이가 약 120㎝에 몸무게는 40㎏이에요. 하지만 평균 기온이 24도인 갈라파고스섬에 사는 갈라파고스펭귄은 약 50㎝ 크기에 몸무게는 2㎏이에요. 두 지점의 중간 정도에 있는 남아메리카 남단(평균 기온 8도)에 서식하는 마젤란펭귄은 약 70㎝ 크기에 몸무게는 5㎏이라고 해요.

서식지 따라 몸의 말단 부위도 달라져요

온도와 생물의 몸 크기 관계를 설명하는 또 다른 법칙이 있어요. 1877년 영국의 생물학자 조엘 앨런(1838~1921)의 이름을 따 '앨런의 법칙'(Allen's rule)이라고 부르죠. 추운 곳에 사는 정온 동물이 따뜻한 지역에 사는 개체보다 귀·코·팔·다리 같은 몸의 말단 부위 크기가 작다는 내용이에요.

추운 곳에 사는 동물일수록 체온 유지를 위해 몸의 표면적 비율을 낮춰 열 손실을 줄이는 것이 유리하겠죠.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고 짧은 말단 부위를 가지게 된다는 거예요. 반대로 더운 곳에 사는 동물은 열 발산을 많이 하기 위해 말단 부위의 크기가 크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동물로 여우가 꼽혀요. 더운 사막 지역에 사는 사막여우는 몸통 길이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큰 귀를 가지고 있어요. 주둥이와 다리는 긴 것이 특징이죠. 평균 몸길이는 24~41㎝이고, 몸무게는 0.68~1.6㎏ 정도랍니다. 반면 북극여우의 귀는 매우 작아요. 털로 덮여 있어 열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구조죠. 주둥이와 다리도 뭉툭하고 짧아서 체온 유지에 도움을 주지요. 북극여우의 몸집은 70~100㎝, 몸무게는 5~10㎏으로 사막여우에 비해 체구가 큰 편입니다.

사람도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추운 지역인 북유럽과 동유럽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더 크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남동쪽보다는 북아시아인들이 평균적으로 더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칙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동물은 환경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사람은 문명을 발달시키며 스스로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키기 때문이에요. 의식주와 생활 방식 또한 신체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답니다.

[변온동물은 어떨까요]

변온(變溫)동물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체내 시스템이 없어요. 이 때문에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해요. 기온이 너무 높거나 낮아지면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일교차가 큰 지역에 사는 변온동물인 도마뱀이나 이구아나는 이른 아침 햇볕을 쬐어 체온을 높이고, 볕이 뜨거워지는 한낮에는 그늘을 찾아 몸을 식혀요.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도 온도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장소에 머무르면서 체내 대사량을 낮춰 추위에 버티기 위한 생존 전략이에요. 따라서 변온동물은 살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온동물은 자신의 체격이나 말단 부위 조절로 체내 열을 조절할 수 있으니 환경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게 진화했지만, 변온동물은 그럴 수 없으니 모습에 큰 차이가 없는 거랍니다.

안주현 중동고 과학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