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7가지 지폐에 고대~현대 건축물 그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래요

입력 : 2022.01.11 03:30

유로화

/유럽중앙은행 홈페이지
/유럽중앙은행 홈페이지
작년 12월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존 유로화 지폐 디자인을 새롭게 바꾼다는 계획을 밝혔어요. 2024년 발행이 목표예요. 이를 위해 유럽연합(EU)에 속한 19국으로부터 새로운 지폐에 적용할 주제를 제안받는다고 해요. 현재 발행되는 유로화는 1996년 디자인됐어요. 오스트리아 국립 은행 소속 디자이너인 로베르트 칼리나의 작품이죠.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 각국은 프랑(프랑스), 마르크(독일), 리라(이탈리아), 페세타(스페인) 등 자체 통화를 가지고 있었어요. 각각의 화폐에는 자국에서 중요한 인물·문화 유적 등이 디자인돼 있었죠.

하지만 유럽 전역에서 통용될 유로화에 특정 국가만의 인물이나 유적·상징을 넣는 건 불가능했답니다. 그래서 칼리나는 유럽에서 발전한 건축 양식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7단계로 구분해 유로화 지폐에 적용하기로 했어요. 각 지폐의 앞면에는 건물의 대문과 창문을, 뒷면에는 교각(다리)을 디자인해 넣었죠. 모두 실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었답니다. 5유로에는 고대 로마 시대에 유행하던 거대한 대문을, 10유로에는 중세 유럽의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따온 아치 구조의 건축물을 넣었어요. 20유로에는 '고딕 양식의 보석'으로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등장해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창을 장식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죠. 유럽 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 양식도 등장해요. 50유로에는 고대 로마 대문에 돌출돼 있는 기둥과 신전에서 본뜬 삼각형 지붕의 모습이 잘 나타나요. 100유로에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표현했어요. 200유로에는 철과 유리로 만든 새로운 양식 아르누보가, 500유로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근대 건축물이 등장했죠.

유럽의 공통 유산인 건축으로 표현한 유로화 디자인은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답니다. 공개 당시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고 극찬을 받았죠. 2013년에는 각 도안을 약간씩 변형했는데요. 지폐 앞면에 위·변조 방지 기술이 적용된 여인의 얼굴 모습을 집어넣었어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에우로페인데요.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여신입니다. '하나의 유럽'을 강조한 거예요.

유로화 주화는 지폐와 달리 국가마다 동전 앞면의 생김새가 달라요. 예컨대 독일은 독수리와 브란덴부르크문을,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 문구와 자유의 여신을, 이탈리아는 콜로세움 등을 넣어요. 뒷면은 ECB에서 정한 공통적인 디자인으로 모두 같죠. EU라는 단일 공동체 안에서 각 국가의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세련된 방식이 아닐까 싶네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