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대한제국 시대 배경 역사 소설… 한일 합병 저지 나선 소녀 이야기
입력 : 2022.01.03 03:30
괴불주머니
괴불주머니를 아시나요? 조선 시대 서민들은 부잣집에서 한복을 짓고 남은 자투리 천을 얻어왔어요. 이 천을 이어 붙여 세모 모양의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죠. 주머니 안에 솜을 도톰하게 넣고 알록달록한 색실을 달아 노리개로 썼어요. 사람들은 주머니가 나쁜 일을 막아 주고 자신의 소원을 이뤄준다고 믿었습니다.
이 책은 1910년 무렵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에요. 윤혜숙 작가의 상상력은 대한제국의 순정효황후가 17살 때 한일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옥새를 감췄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펼쳐집니다. 소설 속 주요 무대는 궁궐입니다. 당시 궁궐 사람들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주인공인 연수는 자수를 놓는 부서의 나인으로 들어갑니다. 연수는 대대로 궁궐에서 수를 놓아 온 집안 출신이에요. 그래서인지 수를 놓는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대를 잇겠다는 결심을 하고 궁에 들어가지요.
연수는 다른 이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소녀였어요. 당시 황후의 마음이 괴롭다는 것을 알아채고 황후에게 괴불주머니를 선물합니다. 황후는 나라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소망과 궁 밖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괴불주머니에 담아요. 그러고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연수와 친구가 됩니다.
연수는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궁궐 밖으로 빼돌리는 과정을 돕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거예요. 위험한 일이었지만 연수는 피하지 않아요. 황후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작가는 이 시기를 "맹렬한 바람이 궁궐 안을 할퀴고 돌아다녔던 시절"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연수의 맑고 곧은 마음을 앗아가지 못했죠.
작가는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숨긴 사건에서 '치욕적인 조약 체결의 부당성에 항거한 사람이 있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연수는 전통 자수를 계승하려는 꿈을 가진 평범한 청소년이었어요. 작가는 역사의 한복판에 연수처럼 주위 사람을 보듬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을 하려고 연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면 100년 전 청소년들이 인생을 걸고 지키려 한 꿈과 우정이 우리 마음에 아름다운 자수처럼 그려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