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몬트리올·모스크바·LA 대회에 총 100여 개국 불참했어요
입력 : 2021.12.22 03:30
올림픽 보이콧
- ▲ 1980년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 개회식의 한 장면. 이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미국 등 60여 국이 보이콧했어요. /IOC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Olympia) 제전에서 유래한 올림픽은 1896년 1회 대회 이후 125년간 지구촌 축제로 자리 잡았어요. 평소 사이가 안 좋은 국가 선수들도 올림픽에서만큼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감동을 주곤 했죠.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처럼 정치적 이유로 일부 국가가 보이콧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 보이콧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가나, 케냐 등 아프리카 28국이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거기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뜻이 담겨 있었죠. 남아공은 19세기부터 영국 지배를 받았고, 1961년 독립한 나라예요. 그런데 이 남아공은 소수 백인만 특혜를 누리는 국가였어요. 흑인들은 차별에 신음하면서 살았죠. 1948년부터 실시한 인종 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아프리칸스어(Afrikaans·네덜란드어가 아프리카에서 현지화하며 발전한 언어)로 '격리'라는 뜻으로,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하는 내용이에요. 유색인종은 백인과 결혼도 못 하고, 거주지나 공공 시설 등도 따로 떨어져 있었죠.
남아공 흑인들은 1976년 정부가 학교 수업에서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자 거세게 불만을 표출했어요. 흑인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며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쏘며 강압적으로 진압하자 시위는 더욱 격렬해져 전국으로 퍼졌어요. 시위대 수백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죠. 그러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남아공 정부를 비판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어요. 사실 남아공은 이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국제사회 비난을 받아 1970년부터 공식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었고, 몇몇 국가는 남아공과 스포츠 교류도 중단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뉴질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이 남아공에 입국해 친선 경기를 가지면서 문제가 됐어요. 럭비는 남아공 백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스포츠였는데, 뉴질랜드 럭비팀이 경기를 갖자 남아공 흑인들은 분노했고, 국제적으로도 비난을 받았죠. 하지만 로버트 멀둔 당시 뉴질랜드 총리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에선 시민들 여행 권리를 제한할 수 없고,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해야한다고 주장했어요. 결국 남아공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뉴질랜드를 비난하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뉴질랜드가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IOC는 뉴질랜드를 참가시켰고, 아프리카 28국이 항의하면서 불참한 겁니다.
악명 높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 인종차별에 맞서 싸워온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폐지됐어요.
냉전 시대 올림픽 갈등의 시작
1980년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은 냉전 이후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에서 열린 올림픽이에요. 그런데 이 대회엔 미국을 중심으로 한 60여 나라가 보이콧했죠. 우리나라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공산화하려 애썼어요. 아프가니스탄이 중동과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에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했는데, 1978년 쿠데타로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이듬해 초엔 이슬람주의를 내건 반란군의 항쟁이 빈번했어요. 1979년 12월 소련은 반란군이 정권을 장악해 아프가니스탄이 친(親)서방으로 기울까 봐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했어요. 반대쪽에선 '무자히딘'이라는 반군 게릴라 단체가 미국과 이슬람 세계 지원을 받으며 소련군에 맞섰어요.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군대를 철수하지 않으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죠. 하지만 소련 태도엔 변화가 없었어요.
결국 미국을 비롯해 서독·호주·일본 등 60여 나라가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해 결국 '반쪽짜리 올림픽'이 개최됐어요. 서방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자 소련과 동독이 올림픽 메달의 51%를 땄다고 해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89년까지 계속됐어요. 소련 생각처럼 전쟁은 잘 풀리지 않았고 계속 패배하자 소련군 사기는 떨어졌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군대를 철수하기에 이르렀답니다.
미국·소련 올림픽 보이콧 주고받아
모스크바 올림픽 다음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었죠. 이번엔 소련이 냉전 체제 속에서 자국(自國) 선수들이 미국에 갔을 때 반대 시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 안전을 위해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러자 소련 우방인 다른 공산 국가 13국도 줄줄이 보이콧에 동참했어요. 겉으론 안전이 이유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엔 공산주의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자 메달은 서방 세계로 쏠렸고, 미국이 금메달 83개를 휩쓸었어요. 그다음이 루마니아 20개였으니 거의 미국 독무대였던 셈이죠.
[보이콧의 유래]
'보이콧이란 단어는 한 인물의 성(姓)에서 유래했어요. 1879년 아일랜드토지연맹(소작농 단체)은 영국 귀족 토지 관리인이었던 찰스 보이콧에게 소작료를 줄여달라고 요구했어요. 보이콧은 이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체납 소작인들에게 퇴거 영장을 보내려 했죠. 이에 분개한 소작인들은 보이콧 농장에서 일하지 않았고, 일반 상인들도 보이콧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어요. 주민들에게 배척당한 보이콧은 결국 그곳을 떠나야 했대요. 그때부터 '보이콧'은 오늘날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벌이는 거부 운동을 뜻하게 됐어요.
- ▲ 196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운동 경기장에 백인과 흑인들이 아예 다른 곳에 앉아 있어요.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때문이었죠. /UN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