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짝 없이 새끼 낳은 콘도르… 종족 번식 본능이 낳은 신비
무성생식하는 생물
- ▲ /그래픽=안병현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는 캘리포니아콘도르(독수리 일종) 가운데 '무성(無性)생식'으로 태어난 사례가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어요. 과학자들은 지난 30년간 900마리가 넘는 콘도르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해 분석했는데, 그중 두 마리가 암컷 유전자만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발견한 거예요. 암컷이 수컷과 짝짓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알을 낳았고 거기에서 새끼가 태어난 것이죠.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은 암컷과 수컷의 짝짓기로 번식해요. 하지만 동물 중에는 암컷과 수컷의 짝짓기 없이 태어나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 '무성생식'이라고 하는데, 콘도르의 무성생식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 과학계에서 화제였어요. 무성생식은 유성생식과 어떻게 다른 걸까요? 또 어떤 동물들이 무성생식을 할까요?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지구의 생물들은 자손을 남겨 세대를 이어가요. 생명체가 자손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으로 나뉘어요. '유성생식'은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해 번식하는 방법이에요. 암컷은 난자, 수컷은 정자라는 생식세포를 만드는데,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자라서 새로운 자손이 태어나는 거예요. 암컷과 수컷의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물려받기 때문에 유전적으로도 다양한 자손이 태어나지요.
반면 '무성생식'은 암수 생식세포의 결합 없이 자손을 만드는 방법이에요. 보통 혼자 자손을 만들기 때문에 '단성(單性)생식' 또는 '처녀생식'이라고도 해요.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대부분 암수 구별이 없어요. 진딧물이나 작은 수서곤충(물에서 주로 살아가는 곤충), 뱀 등이 대표적인 무성생식 동물이죠.
무성생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세균이나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은 자기 몸을 둘로 나눠 자손을 만드는데 이걸 '분열법'이라고 해요. 또 히드라나 말미잘은 몸의 일부에서 작은 돌기가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요. 이걸 '출아법'이라고 해요. 이끼나 곰팡이 같은 균류는 몸의 특정 부분에 생긴 포자에서 싹을 틔워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포자법'을 이용해요.
무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은 빠르게 번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손이 한쪽 성(性)의 유전자만 물려받기 때문에 다양한 유전적 형질이 나타나지 않아 각종 질환에 취약하고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죠. 보통 암수 짝짓기로 태어난 캘리포니아콘도르가 60~70년씩 사는 것과 달리, 무성생식으로 태어난 두 마리는 각각 2년, 8년밖에 못 살고 죽은 것도 그 때문일 것으로 봐요.
유·무성생식 번갈아 하는 동물들
개미와 벌도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둘 다 해요. 예를 들어, 여왕벌은 수컷과 짝짓기 중에 받은 정자를 몸속 주머니(저정낭)에 저장해뒀다 산란할 때마다 꺼내 사용해요. 자기 난자와 정자를 결합한 수정란에선 암컷이 나와요. 또 어떨 땐 난자만으로 알을 낳는 무성생식을 하는데, 이땐 수컷이 태어나요.
보통 조류나 포유류는 유성생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무성생식도 드물게 나타나요. 이번에 무성생식으로 태어난 것으로 밝혀진 캘리포니아콘도르의 어미도 이전엔 수컷과 짝짓기해 새끼들을 낳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무성생식으로 새끼를 낳은 것은 남편 콘도르가 죽자 어떻게든 자식을 남기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어요. 콘도르 자체가 멸종 위기 동물이라서 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네요.
콘도르의 무성생식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을까요? 보통 난자는 암컷 몸속의 난모세포에서 만들어져요. 난모세포는 성숙하는 과정에서 두 개로 분열되는데, 하나는 '알세포'(난자가 될 세포)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극체'가 돼요. 극체는 알세포와 동일한 유전자를 갖지만 생식 능력이 없어서 보통 소멸되죠. 그런데 이 극체가 소멸하지 않고 난자와 결합해서 수정란이 됐고, 이 수정란이 부화해 암컷 유전자만 가진 새끼 콘도르가 된 거예요.
보통 유성생식을 하는 상어가 무성생식을 한 경우도 최근에 있었어요.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의 칼라고노네 수족관에는 10년 동안 수컷 없이 암컷 별상어 2마리만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8월 새끼 상어가 태어난 거예요. 별상어가 무성생식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래요. 수컷 없이 장기간 놔뒀더니 암컷이 종족 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무성생식을 한 것으로 봐요.
보통 유·무성 생식을 둘 다 하는 개미 세계에서 완전히 무성생식만 하는 집단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최근 호주 시드니대 토시히사 야스히로 박사팀이 일본 남부 해안 지방에서 흰개미 집단 74개를 조사했더니, 50%(37개) 집단이 암컷만으로 이뤄졌어요. 암컷 흰개미들이 캘리포니아콘도르처럼 정자와 수정되지 않은 알을 낳아 번식한 거예요. 흰개미는 보통 육지에서 생활하면서 창형 흡충·간충 같은 기생충의 공격을 받는데, 수컷이 이 공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요. 그런데 해안 지방에는 기후 특성상 이런 기생충이 살지 않기 때문에 수컷 역할이 줄어들어 자연적으로 암컷만 남은 흰개미 집단이 생겼다고 해요. 이 흰개미 집단들은 유성생식을 하는 흰개미들보다 염색체가 하나 더 많았는데, 다른 종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연구진은 보고 있어요.
이처럼 생물의 세계는 신기한 일로 가득해요. 과학자들이 생명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지만, 무궁무진한 생명의 수수께끼를 다 풀 수는 없을 거예요. 모든 생명체가 각각의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평소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생물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될 테죠.
[감자·고구마… 무성생식으로 태어났죠]
식물 중에도 씨앗을 뿌리지 않고 뿌리·줄기·잎을 땅에 심어 번식시키는 것들이 있어요. 이런 번식 방법을 무성생식의 일종인 '영양(營養)생식'이라고 해요. 줄기와 뿌리를 땅에 심어 번식시키는 감자·고구마가 대표적이에요. 가지를 잘라 땅에 꽂아 자라게 하는 '꺾꽂이'를 하는 식물들도 있어요. 국화는 가지를 5㎝ 정도 잘라 꽂으면 2~3주 사이에 뿌리가 나와요. 수국이나 개나리·버드나무 등도 꺾꽂이를 이용해 번식시켜요. 산세비에리아 등은 잎을 땅에 꽂아 뿌리를 내리게 하는 '잎꽂이'로 번식시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