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근대적 감옥은 16세기 영국에서 생겨… 궁전이었던 곳에 죄수 수감했어요
입력 : 2021.12.21 03:30
교도소
- ▲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옥사 모습. /문화재청
인류 문명 초기엔 사람을 가둬 자유를 박탈하기보다 사형이나 신체를 아프게 하거나 훼손하는 신체형, 벌금형, 노예로 만드는 형 등이 일반적이었어요. 감옥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죄수들을 처벌하는 걸 넘어서 잘 가르쳐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 거예요. 하지만 이 같은 취지와 달리 고대 아테네와 로마에 있는 감옥은 보통 재판 전이나 처형되기 전 임시로 수감하는 용도로 활용됐다고 해요.
중국 진나라는 엄격한 법치를 실시한 것으로 유명해요. 예를 들어 이마에 죄목을 문신으로 새기는 형벌과 강제 노역형을 함께 내렸어요. 이 형을 받으면 죄목을 문신으로 새긴 채 감옥에 갇혀 성을 쌓는 등 일을 해야 했죠.
근대적 감옥의 시초로 여기는 것은 16세기 영국의 브라이드웰 감옥입니다. 원래 궁전이었던 곳을 영국 국왕 에드워드 6세(재위 1547~1553)의 지시로 1555년부터 교도소로 사용했어요. 15~16세기 신항로 개척 이후엔 죄지은 사람들을 식민지로 보내는 처벌 방식이 생겨났어요. 배를 타고 멀고 척박한 땅으로 가는 일 자체가 감옥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었죠. 지금의 호주는 식민지로 이주한 죄수들이 세운 대표적 나라예요.
처벌이 아닌 교화를 위해 감옥에 가두는 근대적 징역은 계몽사상이 대두한 17세기 후반~18세기에 전 유럽으로 확산됐어요. 이때 감옥 시설도 개선됐는데 영국 존 하워드(1726~1790)의 역할이 컸어요. 그의 감옥 개혁 운동으로 영국에서 1779년 교도소법이 제정돼 감옥의 위생과 식단 등이 개선됐죠.
우리나라 조선 시대 때 '전옥서'라는 관청에서 죄수들을 수감하고 관리했어요. 이후 대한제국 순종 시기인 1907년 최초의 근대식 교도소인 '경성감옥'이 건설됐어요. 이 감옥은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가 만들었기 때문에 주로 일본에 반대한 인사들을 가뒀어요. 이후 수감 인원이 늘어 포화 상태가 되자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을 짓고 그곳을 경성감옥으로 불렀고, 기존 경성감옥은 서대문 감옥으로 불렀어요. 서대문 감옥은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죠. 서대문형무소는 주로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인사가 투옥됐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