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무거운 쌀, 큰 가구 내리다보면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범벅되죠

입력 : 2021.12.20 03:30

까대기

[재밌다, 이 책!] 무거운 쌀, 큰 가구 내리다보면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범벅되죠
이종철 글·그림 l 출판사 보리 l 가격 1만5000원

어제 인터넷 매장에서 다이어리를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어요. 이 다이어리는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업체가 다이어리를 포장해서 택배 회사로 보냈고 다이어리는 물류센터와 지역지점을 거쳐 택배 기사를 통해 내 집 앞에 도착했을 거예요. 실제보다 간략하게 표현했지만 이 과정 곳곳에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차를 운전하고 택배 물건들을 분류하고 배달한 덕분에 우리는 주문한 물건을 집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어요.

'까대기'는 택배 상자 하나에 깃든 땀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 까대기는 화물차에 실린 택배 물건을 내리는 일을 말하는 업계 용어예요. 주인공 이바다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 왔어요. 바다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화도 그릴 생각에 이른 아침에 4~5시간씩 까대기를 시작합니다. 조그만 상자부터 무거운 쌀이나 생수, 덩치 큰 가구까지 손으로 나르는 일이지요.

바다씨가 해보니 까대기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힘든 일이었어요. 추운 겨울 새벽에 일을 하면 손발은 시린데 온몸에는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고된 노동이었어요. 까대기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즌은 김장철이래요. 김치가 무척 무거운 데다가 배송 중에 김치가 발효되면서 생긴 가스로 상자가 빵빵해져서 터지기도 한대요. 상자가 터지면 귀한 김치도 망가지고 다른 택배나 상자 운반 레일도 오염시키니, 생각만 해도 난감한 일이네요.

바다씨 옆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어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오전에만 까대기를 하는 친구, 하루에 12시간 이상 배송하는 택배 기사, 몸을 다치고도 돈을 벌어야 해서 허리에 복대를 차고 쌀자루를 나르는 아저씨. 이들 모두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들은 추운 겨울에 뜨거운 커피를 나눠 마십니다. 산더미 같은 택배 박스를 내릴 때는 박스가 무너져 동료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옆에서 잡아줍니다. 바다씨의 만화 창작을 응원하며 자신이 살아온 굴곡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만화의 소재로 쓰라면서요.

이종철 작가는 이 책에 자기 이야기를 담았어요. 작가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서울에 와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6년이나 했다고 해요. 그 일을 한 긴 시간이 이종철 작가를 만화가로 만들어준 것이지요. 작가는 '그저 택배 일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택배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마음에 '사람'이 남습니다. 매일의 고단함을 견디며 일하면서도 곁의 사람을 지켜주는 사람들입니다.

서현숙 '소년을 읽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