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연대 소식에 "국공합작이다. 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국공합작'은 1920~1940년대 이념이 다른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손잡은 걸 말해요. 심 후보는 거대 양당(兩黨) 체제를 끝내려면 노선이 다른 국민의당과 연대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어요. 정치 세계에서는 이념이나 노선이 다른 진영이 연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어요. 각자 실리를 위해, 또 공공의 적에 맞서기 위해 적과도 손을 잡는 것이죠.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벌어졌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연대

1919년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우리나라에서 3·1 운동이 벌어졌듯 중국에서는 '5·4 운동'이 일어났어요. 이후 중국에선 민족주의·무정부주의·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념이 급성장했지요. 1919년 쑨원이 국민당을 창당했고, 1921년 마오쩌둥 등은 러시아혁명에 영향받아 사회주의 이념의 공산당을 창당했어요.

당시 국민당을 이끈 쑨원은 군벌 세력과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대응하려면 공산당과 손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막 생겨난 공산당도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려면 국민당과 손잡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고요.

쑨원은 공산당원이 국민당에 가입할 수 있게 했어요. 그리고 군사를 기르려고 황포군관학교를 설립했는데 학교 발전을 위해 소련의 군사 고문을 파견받았어요.

그런데 국민당과 공산당의 관계는 쑨원이 1925년 사망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쑨원은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으니 동지들은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공산당과의 합작에 반대하는 국민당 내 우파의 반발이 거세졌어요. 그리고 황포군관학교 교장을 지낸 장제스가 국민당 권력을 장악했어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장제스는 국민당 내 공산당을 척결하기 시작했고, 결국 1927년 7월 1차 국공합작은 깨졌습니다. 이후 국민당 정부의 공산당 탄압은 계속됐어요. 공산당은 국민당 정부군을 피해 1만㎞ 넘게 걸어가는 '대장정'이란 고난을 겪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일본을 중국에서 몰아내는 것이 급선무가 됐고, 지식인들도 장제스에게 내전(內戰)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죠. 장제스가 이를 거부하자 1936년 12월 12일 장제스의 부하였던 장쉐량이 시안을 방문한 장제스를 가두고 내전 중지, 구국 회의 개최 등을 요구하는 '시안 사변'을 일으켰어요. 장제스는 결국 석방됐지만 장쉐량의 요구대로 1937년 9월 22일 두 번째 국공합작이 이뤄졌고 국민당은 공산당에 대한 공격을 멈췄어요.

그러나 '내전 중지'가 '국공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서로 공격하지 않았을 뿐 공산당은 농촌에서 세력을 확대하며 힘을 키웠고, 국민당은 일본과 전쟁을 끝내고 공산당과 결전을 치를 날만을 기다렸죠. 결국 중일(中日)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 '국공내전'이 일어나면서 2차 국공합작도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미소 연합'

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소련이 연합한 것도 이념이 전혀 다른 국가들이 연합한 대표적 사례예요. 1917년 사회주의를 표방한 소비에트 국가가 만들어진 이래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날을 세워 왔어요.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어요. 그러나 소련의 군비 확장에 불안감을 느낀 독일은 1941년 6월 22일 독·소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략했지요. 이후 일본의 진주만 공습, 미국에 대한 히틀러의 선전포고가 이어지자 미국은 소련을 지원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어요.

미소가 연합한 대표적 사례는 1942년 6월 11일 무기 대여에 대한 협정을 맺은 것이에요. 미국이 법을 고쳐 당초 '민주주의 국가'로 한정한 무기대여법의 지원 대상을 '자유를 위해 싸우는 나라'로 확대한 거예요. 미국은 항공기 1만4795대와 전차·트럭 등 무기뿐 아니라 식량 448만t 등 일상용품까지 엄청난 양을 소련에 지원했죠. 소련이 동맹국이 되자 미국 각종 매체에서도 소련을 긍정적으로 그렸다고 해요. 이전까지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스탈린도 '나치의 파괴 행위에 저항하는 소련 국민의 미덕을 구현하는 인물'로 그려졌대요.

하지만 둘의 연합 역시 전쟁이 끝나면서 점차 무너졌어요. 특히 소련과 동맹에 앞장섰던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5년 4월 갑자기 사망하자 미소 관계는 더 악화됐어요. 결국 1947년 공산주의 세력 확대 저지 등을 원칙으로 한 '트루먼 독트린' 등이 발표되면서 미소의 이념 대립인 냉전(冷戰)은 더욱 심화됐습니다.

오랑캐를 무찌르려 오랑캐와 손잡다

수백 년 전 중국에서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세력이 연합한 경우가 있었어요. 11세기 초 만주 일대에 여진족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어요. 여진족은 발해·거란이 강성했을 땐 그들의 지배를 받던 민족이었죠. 그런데 여진족은 다른 유목 민족과 달리 수렵 활동뿐 아니라 농사도 잘 지어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어요. 마침내 여진족은 작은 부족들을 통합해 1115년 금나라를 건국했어요. 그리고 금나라는 거란이 세운 요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만주 일대에서 이런 새로운 정세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송나라는 금나라와 연합하고자 했어요. 송은 요나라와는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숙적이었거든요. 송과 금의 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어요. 중화사상을 대대로 이어 내려온 중국(송)은 유목 민족들은 오랑캐라며 멸시해왔거든요. 그런데 눈엣가시 같은 오랑캐를 무찌르려고 더 힘센 오랑캐와 손잡은 꼴이죠.

송과 금은 '해상의 맹약'을 맺었어요. 두 나라가 요나라의 눈을 피해 바다로 사신들을 주고받으며 체결한 동맹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맹약 직후 송과 금은 요에 대한 협공에 나섰고, 결국 요는 무너졌어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금은 대군을 끌고 송을 쳐들어가 수도 개봉을 함락시켰어요. 송 황제 등 수천 명은 북방에 포로로 끌려갔고, 송은 결국 멸망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