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이집트에선 숭배 대상… 그리스에선 잔인한 괴물이죠

입력 : 2021.12.08 03:30

스핑크스

①이집트 기자의 카프레왕 피라미드 근처에 있는 스핑크스.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스핑크스예요. 파라오의 용맹과 힘을 상징하고,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해요. ②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오른쪽)와 스핑크스를 그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1864). 스핑크스는 여자 얼굴에 사자 몸을 하고 날개가 달린 괴물이에요. ③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스핑크스의 길’. 오랜 복원을 거쳐 최근 대중에게 공개됐어요. /EPA 연합뉴스·위키피디아
①이집트 기자의 카프레왕 피라미드 근처에 있는 스핑크스.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스핑크스예요. 파라오의 용맹과 힘을 상징하고,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해요. ②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오른쪽)와 스핑크스를 그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1864). 스핑크스는 여자 얼굴에 사자 몸을 하고 날개가 달린 괴물이에요. ③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스핑크스의 길’. 오랜 복원을 거쳐 최근 대중에게 공개됐어요. /EPA 연합뉴스·위키피디아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이집트 남부 나일강변의 룩소르에서 '스핑크스의 길'을 공개하는 이벤트가 열렸어요.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 중 하나예요. 여기엔 기원전 1000년쯤 완성된 세계 최대 규모 신전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있는데, 두 신전을 잇는 약 2.7㎞ 길 양옆에는 스핑크스와 숫양 석상이 쭉 늘어서 있죠. 이 길을 '스핑크스의 길'이라고 불러요. 이 길은 수백 년간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1949년 이집트 고고학자가 스핑크스 일부를 발견한 이래 오랫동안 복원 작업을 해왔어요. 그리고 마침내 이번에 대중에게 공개한 거예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이집트는 국가 전체가 노천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유적이 많아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요. 그중에서도 스핑크스(Sphinx)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요. 스핑크스처럼 인간과 짐승이 섞인 신이나 전설의 동물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곳곳에 있어요. 하지만 거대한 규모로 남은 것은 이집트 스핑크스밖에 없답니다. 스핑크스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잔인한 그리스 스핑크스

우리가 떠올리는 '스핑크스'는 사람 얼굴에 사자 몸을 하고 길목에 엎드리고 앉아 오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모습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이집트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랍니다.

그리스 스핑크스는 얼굴은 여자이고, 몸통은 사자, 등에는 날개가 달린 괴물이에요. 이 괴물은 그리스 테베로 들어가는 길목에 앉아 사람들에게 "아침엔 네 다리, 낮엔 두 다리, 밤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내고 못 맞히면 잡아먹어 버려요.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사람"이라고 정답을 말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버렸대요. 이런 잔인한 이야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 '스핑크스'라는 말에 '살인자'라는 뜻도 있었대요.

고대 이집트에도 그리스 스핑크스 같은 전설의 동물이 있었는데, 둘은 아주 달라요. 남자 얼굴을 하고, 성격은 온순하며 숭배의 대상이었죠. 이집트 전역에서 스핑크스를 본뜬 부조나 조각상 등이 있어요. 얼굴은 양이나 매 등으로 바뀔 때도 있어요.

고대 이집트인은 스핑크스를 여러 이름으로 불렀어요. '루키(서쪽에 빛나는 것)' '하르마키스(지평선의 태양신)', '쉐세프 앙크(파라오의 살아 있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죠. 이 중 '쉐세프 앙크'가 그리스로 전해져 '스핑크스'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지금은 이집트나 그리스 모두 '스핑크스'라고 하지요.

파라오의 힘 상징하죠

이집트에는 수천 개의 스핑크스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건 기자(Giza)에 있어요. 이집트 4왕조(기원전 2575~기원전 2465년)에 해당하는 쿠푸왕·카프레왕·멘카우리왕 등 3대(代)의 거대 피라미드가 모여 있는 곳이죠. 이 중 카프레왕 피라미드 근처에 가장 크고 오래된 스핑크스가 있어요. 길이 73m, 높이 20m에 달하며, 기원전 2560년쯤 만들어졌어요. 다른 곳에서 돌을 옮겨온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거대한 석회암 하나를 통째로 조각해 만든 것이래요.

사실 스핑크스를 왜 만들었는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요. 역사학자들은 카프레왕이 힘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 몸에 파라오 머리를 붙여 왕권을 드러내려 만든 것으로 봐요. 스핑크스 얼굴은 카프레왕 얼굴을 본뜬 것으로 추정하고요. 이 스핑크스는 정확히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대요.

모래 속에 묻혔던 스핑크스

기자의 스핑크스는 아주 오래 모래에 묻혀 있었대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여행한 후 쓴 책 '역사'에 스핑크스 얘기가 한 줄도 없는 걸 보면 당시 스핑크스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죠.

스핑크스는 원래 얼굴에 붉은색을 칠했고, 이마 위에는 코브라 조각이 있었는데 사라졌어요. 거센 모래 폭풍에 풍화됐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부서진 코는 1799년 이집트를 원정한 나폴레옹 군대가 대포를 쏴서 부서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전에 그려진 그림에 이미 스핑크스 코가 없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져요. 이슬람 세력이 우상화에 반대하며 부수었다는 설도 있어요. 비록 얼굴은 많이 훼손됐지만, 스핑크스 입가의 신비한 웃음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모래에 묻힌 스핑크스에 대한 발굴이 진행된 건 1799년 나폴레옹 군대에 발견되면서부터래요. 이후 발굴이 진행됐지만 예산이 부족했죠. 1886년 프랑스의 이집트학 학자 가스통 마스페로가 "인류 유산 스핑크스를 이대로 매장시킬 것인가"라고 대중에게 호소해 기부금이 쌓여 발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모래에서 끄집어냈더니 이젠 스핑크스가 바깥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했어요. 스핑크스는 지금도 자연적으로 바람 등에 침식되고 있어 이집트 정부는 복원 등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답니다.

[시간마다 이름 다른 태양신 '라']

고대 이집트에는 지역마다 수호신이 있었고 왕들도 숭배하는 신이 달랐어요. 하지만 모든 신 중에 태양신 '라'의 지위가 가장 높아요. 이집트인들은 태양을 시간별로 다르게 불렀어요. 아침엔 '케프리', 정오엔 '라', 저녁엔 '아툼'이라고 했죠. '라'는 시간·일·월·계절·연도를 정하고 모든 생명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받아들여져요.

정효진 양영디지털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