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과거·미래 말고 현재 삶에 충실하라' 자유분방한 60대 노인이 전하는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
- ▲ 카잔차키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 /IMDb 홈페이지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호메로스 이후 그리스가 낳은 가장 뛰어난 작가로 꼽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1942년 발표한 '그리스인 조르바'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어요. 이 작품으로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수상은 못 했어요. 당시 문학계에선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이 비극이다.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로운 인간의 원형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어떤 내용일까요?
소설 주인공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인물이에요. 그는 광산 사업을 하려고 크레타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키가 크고 몸이 마른 60대 노인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났어요. 조르바는 말하고 행동하는 데 거리낌이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마치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뱃사람처럼 호방한 사람이었죠. 반면 주인공은 별명이 '책벌레'일 정도로 책으로 세상을 배운 사람이에요. 그는 이렇게 자신과 매우 다른 조르바와 크레타 해변에서 1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차츰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 갑니다.
사실 조르바의 삶은 자유를 넘어서 남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또 미친 사람 같아 보일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조르바는 질그릇을 만들려고 물레를 돌리는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린다면서 도끼로 내리쳐 잘라버리죠. 또 돈과 권력만 탐하는 수도원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수도사에게 말하기도 해요. 이런 조르바의 행동을 사회 통념의 잣대로 보면 그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이죠.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는 점을 말하고 있어요. 그가 주인공에게 "책을 불태우라"고 한 것도 얼핏 보면 인류의 지혜가 집약된 책을 없애라는 게 이해가 안 가죠. 하지만 조르바는 과거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책 내용을 따르다 보면 자신만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걸 강조한 거예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한 장소에 머물러 있으면 나는 그만 죽을 것 같다"고 했을 정도로 전 세계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녔어요. 유럽 대부분 나라와 일본·중국까지 여행했죠. 그리고 다시 고향 크레타섬으로 돌아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란 사람과 함께 사업을 했는데, 조르바스가 바로 소설 속 조르바의 모델이에요.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어요. "나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나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