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수학 산책] 또 다른 이름은 연륜… 200억 명품 악기 진위 가리는데 활용됐죠

입력 : 2021.11.25 03:30

나이테

/픽사베이
/픽사베이
가을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준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아요. 경기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는 나이가 1100~1300세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로 추정됩니다. 높이 42m, 가슴 높이 둘레는 14m에 이르지요.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비롯해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지거나 큰 소리가 났다고 해요.

나무의 수명은 '나이테<사진>'로 알 수 있어요. 나무줄기를 가로로 자르면 나이테를 볼 수 있어요. 나이테는 '연륜(年輪)'이라고도 해요. 나무줄기는 세포가 분열하면서 점점 굵어지는데, 봄·여름엔 세포 분열이 활발해지고 물이 충분히 공급되기 때문에 세포 부피도 커져요. 그래서 이때 자란 부분은 부드럽고 색도 연하죠. 반면 가을·겨울엔 세포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부피도 작고 조직이 치밀해져서 색이 진해져요. 이렇게 계절 변화에 따라 연하고 짙은 색이 번갈아 가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동그란 모양의 나이테가 생기는 거예요. 나이테는 1년에 하나씩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이테를 세어보면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죠.

나이테를 분석해 연대를 측정하고 과거의 기후와 생태를 연구하는 학문을 '연륜연대학'이라고 해요. 세계적인 연륜연대학자 발레리 트루에가 쓴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를 보면, 나이테가 우리 주변 많은 것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트루에가 나이테와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 관계를 조사했더니, 나이테 폭이 좁은 해에는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해서 배가 많이 침몰했고 나이테 폭이 넓은 해에는 날씨가 온화해서 무역 활동이 활발했을 뿐 아니라 무역선을 노리는 해적이 기승을 부렸대요.

나이테를 통해서 같은 시기에 자란 나무인지도 알 수 있어요. 같은 기후 속에서 자란 같은 종류의 나무라면 나이테의 패턴도 같기 때문이지요.

나이테로 악기의 진위가 밝혀진 적도 있어요. 200억원이 넘는 가치로 평가받는 '메시아'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1716년 만들었는데 현존하는 가장 비싼 바이올린으로 유명해요. 이 악기는 1999년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가 2016년 진품으로 확인받았어요. 이때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나이테였어요. 메시아의 나이테 패턴을 1724년에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의 또 다른 바이올린 '엑스-빌헬미'의 나이테와 비교한 결과 정확히 일치했어요. 즉, 메시아가 진품이 확실한 '엑스-빌헬미'와 같은 나무로 만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진품으로 인정받은 거예요.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