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유대인 '디아스포라', 베트남 '보트 피플'이 대표적이죠

입력 : 2021.11.24 03:30

난민의 역사

(위 사진)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작은 배를 타고 피란을 가는 남베트남 사람들의 모습. 이들을‘보트 피플’이라고 불러요. (아래 사진)지난 15일 EU(유럽연합) 국가인 폴란드로 가기 위해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으로 모여드는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 아빠로 보이는 남성이 아이를 어깨에 올리고 걸어가고 있어요. /위키피디아·로이터 연합뉴스
(위 사진)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작은 배를 타고 피란을 가는 남베트남 사람들의 모습. 이들을‘보트 피플’이라고 불러요. (아래 사진)지난 15일 EU(유럽연합) 국가인 폴란드로 가기 위해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으로 모여드는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 아빠로 보이는 남성이 아이를 어깨에 올리고 걸어가고 있어요. /위키피디아·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라루스와 폴란드가 '난민'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었어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이끄는 벨라루스가 중동·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폴란드 등 EU(유럽연합) 국가에 의도적으로 보낸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에요. EU가 루카셴코 대통령의 비민주적 통치를 문제 삼아 경제제재를 가하자, 벨라루스가 보복으로 EU 국가에 난민을 보낸다는 거지요. 실제 최근 들어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엔 벨라루스를 통해 불법 입국한 난민이 크게 늘어났어요. 따라서 벨라루스 인접국들은 난민이 넘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건설하는 등 대응하고 있답니다.

난민은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곤경에 빠진 사람이나 테러, 정치적 괴롭힘 등을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들을 말해요. 어려운 사람은 국적 상관없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이들이 수천~수만 명에 이른다면 다른 국가들도 고민이 많을 거예요. 최근엔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난민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의 수용이 국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촌 난민이 824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역사 속에는 어떤 난민들이 있을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종교적 이유로 오랫동안 난민 생활을 한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에요.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가나안(현 팔레스타인)에 정착했지만 흉년으로 먹을 게 없어지자 이집트로 가서 노예와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을 했어요. 이후 모세의 지도를 받아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민족 대이동을 감행했죠. 결국 오랜 방랑 끝에 기원전 11세기쯤 가나안에 이스라엘 왕조를 세웠어요. 하지만 이후 가나안을 점령한 로마제국도 유대인을 차별하고 억압했고, 결국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해버렸죠.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가 됐어요.

박해를 피해 떠돌던 유대인들은 자기들끼리 정보 교환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천시했던 상업에 종사하며 부를 쌓았어요. 하지만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근대 이후까지 계속됐어요. 20세기 들어 유대인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어요. 영국이 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7년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건설을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을 했기 때문이죠. 돈줄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에게서 전쟁 자금을 끌어내고 유대인에게 우호적인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기 위한 영국의 전략이었어요.

하지만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수천 년간 살아온 아랍인들이 있었어요. 영국은 밸푸어 선언 2년 전엔 아랍인들과 '후세인-맥마흔 협정'을 맺었어요.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팔레스타인에 아랍인들이 국가를 세우는 걸 찬성한다는 내용이었어요.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모순된 약속을 한 것이죠.

전쟁이 끝나자 많은 유대인은 '밸푸어 선언'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에 모여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어요. 이에 반발하는 아랍인들과 이스라엘 사이엔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어요.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았죠. 지금도 팔레스타인 난민 570만명이 인근 국가 등을 떠돌고 있어요.

조국 떠난 남베트남 사람들

정치적 이유로 난민이 된 경우도 있어요. 베트남은 1954년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하며 독립했지만 남북으로 분단되어 내전이 일어났어요. 이후 1960년대 중반 미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며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됐어요. 북베트남 쪽으로 전세가 기울자 미군은 철수했고,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함락한 뒤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웠어요.

패망한 남베트남에선 배를 타고 탈출하는 피란민들이 줄을 이었어요. 정치적으로 숙청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남베트남 주류층이 조국을 떠나기로 한 것이죠. 또 사회주의가 된 베트남에서 어렵게 모은 재산을 빼앗기게 된 중국 화교들도 탈출을 감행했어요.

이렇게 배를 타고 탈출한 사람들을 '보트 피플(boat people)'이라고 불렀어요. 1973년부터 1988년 사이 100만명 넘는 보트 피플이 베트남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작은 배에 몸을 맡긴 사람 중 수십만 명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폭풍에 배가 뒤집히거나 탈수 등으로 사망했다고 해요. 목숨을 걸고 탈출한 보트 피플들은 처음엔 홍콩·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 등 인근 동남아 국가로 갔어요. 나중엔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미국·호주·캐나다·프랑스·독일·영국까지 갔지요. 이후 1980년대 후반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대요.

'아랍의 봄' 이후 급증한 중동·아프리카 난민

2011년을 기점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난민이 급증했어요. 발단은 한 청년의 죽음이었어요. 2010년 12월 튀니지 소도시의 26세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자기 몸에 불을 붙였어요. 그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안 주자 단속에 걸렸는데, 이에 대한 항의였어요. 이 사건은 빈곤과 실업, 정부의 부정부패 등에 불만이 누적됐던 사람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반(反)정부 시위로 번졌어요. 튀니지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리비아·이집트·시리아·예멘 등으로 거대한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갔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했죠. 이를 '아랍의 봄'이라고 해요.

하지만 따듯한 봄바람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 정세가 불안정한 나라들이 내전에 휩싸인 거예요. 리비아가 대표적이에요. 42년간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가 사망한 뒤 내전이 벌어져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죠.

이렇게 내전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들은 지금도 목숨을 걸고 유럽행 배에 올라타고 있어요. 좁은 보트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타서 전복 사고도 빈번하고, 어린아이들도 목숨을 잃고 있어요.

유엔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1~6월 최소 1146명의 난민이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다 사망했대요. 이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 지중해는 '죽음의 바다'로 불려요. 이런 난민들의 현실은 나라가 안정되어야 국민들이 고통받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서민영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