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맛좋은 바나나·수박… 처음엔 씨가 많아 먹기 힘들었대요

입력 : 2021.11.23 03:30

품종개량
쓴맛 당근, 독성 있는 가지
사람이 먹기 좋게 유전 특성 바꿔
인류의 식량 자원으로 길러냈죠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농산물 재배 지역이 많이 달라졌어요. 1980년대만 해도 대구 인근에서 주로 재배됐던 사과는 1990년대 후반에 경북 지역으로 올라왔고, 최근엔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도 재배된다고 해요. 또 파인애플·애플망고 같은 아열대 작물이 한반도에서 재배되고 있지요.

미 항공우주국은 기후변화가 지난 10년간 전 세계 주요 식량 작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해 지난 1일 과학 저널 '네이처 푸드'에 발표했어요. 연구팀이 기후변화 시나리오 5가지에 따른 작물 생산량 변동을 비교했더니, 인류가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최상 시나리오에선 10년 후 옥수수 수확량이 과거보다 6% 감소하지만, 기후변화를 방치하는 최악 시나리오에선 수확량이 2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어요. 기후변화가 인류의 식량 부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분석 결과지요.

이런 문제에 대비해 우선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야 해요. 하지만 동시에 변하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작물을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작물 수확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생물의 유전적 특성을 바꾸거나 새 품종을 만드는 것을 '품종개량'이라고 해요. 우리가 지금 먹는 여러 농작물도 품종개량 결과물이랍니다.

이삭 닮은 옥수수 조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인 '옥수수'는 품종개량의 대표적 사례예요. 옥수수는 쌀·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식량 자원이지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유일하게 기르는 작물로 나오는 것도 옥수수예요.

인간은 언제부터 옥수수를 먹었을까요? 약 9000년 전 아메리카 지역의 '테오신테(teosinte)'라는 식물을 원주민들이 작물로 기르기 시작했고,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설이 유력해요. 우리나라에는 16~17세기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테오신테'는 옥수수의 조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 먹는 탱글탱글하고 노란 알이 박힌 옥수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 작고 딱딱한 열매 10~12개 정도가 달려 있고 마치 이삭같이 생겼죠. 테오신테는 수많은 교배를 거쳐 크고 부드러운 낟알이 늘어선 형태로 바뀌었고, 결국 키가 2~3m에 달하는 현재 옥수수에 이르렀다고 해요.

큼직한 씨가 있었던 바나나

바나나도 옥수수처럼 야생 상태에선 지금과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바나나는 기원전 약 7000~5000년에 말레이 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각지로 전파돼 지금은 전 세계에서 많이 재배되는 과일 중 하나가 됐죠.

지금 우리가 먹는 바나나에는 눈으론 잘 안 보이는 아주 작은 씨가 있어요. 먹을 때 전혀 불편하지 않죠. 하지만 맨 처음 야생 바나나에는 단단하고 커다란 씨가 있어서 열매를 먹을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처음엔 주로 뿌리를 먹으려고 길렀는데, 어느 날 열매에 씨가 거의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났고 이후 씨가 없는 쪽으로 품종을 개량해 열매인 바나나를 우리가 과일로 먹을 수 있게 됐대요.

가지는 왜 '에그플랜트'일까

길쭉하고 보랏빛이 도는 가지의 영어 이름은 '에그플랜트(eggplant)'예요. 야생 가지는 동그랗고 하얀 작은 새의 알(egg)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래요. 심지어 야생 가지에는 독성과 뾰족한 가시도 있었다고 하니, 지금과는 정말 달랐죠. 그런 가지도 인간이 먹기 좋게 품종이 개량되면서 독성과 가시도 사라지고 지금처럼 굵고 길쭉한 모양이 된 것이랍니다.

당근은 10세기 무렵 소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여러 갈래의 나무뿌리처럼 생긴 데다 색이 옅고 쓴맛이 강했대요. 이후 수차례 품종을 개량한 끝에 지금처럼 굵고 단맛 나는 주황색 당근이 됐지요.

여름철 대표 과일 수박도 맨 처음 야생 상태 때는 씨가 많고 수분은 적었대요. 이후 씨를 줄이고 당도와 수분 함량을 높이고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 함량도 높이는 방향으로 여러 차례 품종이 개량됐어요. 최근엔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맞춰 크기를 줄인 '애플수박'이나 껍질 색은 어둡고 과육은 노란 '블랙망고수박' 등 다양한 품종개량 수박이 판매되고 있지요. 인류는 지금도 여러 식물의 품종개량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이미 품종을 개량해 사람들이 잘 이용하고 있는 식물들도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병충해에 강하며 맛도 좋게 하기 위해서예요.

[노학자의 집념으로 밝혀진 옥수수 조상]

생물학자 조지 비들(George Beadle·1903~1989)은 대학원생 시절인 1930년대 테오신테와 옥수수가 같은 종이라고 주장했어요. 테오신테와 옥수수의 교배로 태어난 잡종 후손 중 두 조상이 같은 종이라야 나올 수 있는 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주장은 당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는 다른 연구에 몰두해 1958년 특정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죠. 그는 이후 시카고대 총장을 지냈는데, 1968년 65세로 은퇴하면서 다시 옥수수 연구에 매달렸어요. 그는 테오신테와 옥수수를 교배해 얻은 잡종 후손 5만 개체를 분석해 500개 중 하나꼴로 잡종이 아닌 테오신테와 옥수수와 유사한 개체가 나온다는 걸 발견했고 그의 가설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죠. 결국 그의 주장은 다른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를 거쳐 마침내 인정받게 됐답니다.

안주현 서울 중동고 과학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