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예술 돋보기] 18세기 '자동기계인형' 나오자 신기해하며 두려워했죠

입력 : 2021.11.22 03:30

로봇과 기계 작품

①피에르 자케드로가 만든 오토마톤‘작가’(1774). 오른쪽 사진은‘작가’의 등 모습. 안쪽에 기계 부품 수백 개가 들어있어요. ②페르낭 레제‘엄마와 아이’(1922). ③라울 하우스만‘기계적인 머리’(1920). ④백남준‘쿠베르탱’(2003). /JAQUET DROZ 홈페이지·이주은 교수 제공
①피에르 자케드로가 만든 오토마톤‘작가’(1774). 오른쪽 사진은‘작가’의 등 모습. 안쪽에 기계 부품 수백 개가 들어있어요. ②페르낭 레제‘엄마와 아이’(1922). ③라울 하우스만‘기계적인 머리’(1920). ④백남준‘쿠베르탱’(2003). /JAQUET DROZ 홈페이지·이주은 교수 제공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제품 수요는 늘었는데, 코로나로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직장으로 돌아오지 않아 기업들이 부족한 일손을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북미 지역 기업들이 지난 9월까지 주문한 산업용 로봇이 3만대 가까이 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고 합니다.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려는 기업들의 발걸음이 코로나로 인해 더 빨라진 것이지요.

로봇의 기원 '오토마톤'

이제 로봇과 인공지능(AI)을 우리 주변에서 보기란 어렵지 않아요.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사람 대신 서빙을 하고 커피를 만드는 로봇이 활동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를 닮은 기계 인간을 만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든 '인형 달린 물시계'까지 거슬러 갈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6~17세기쯤 유럽이었다고 해요. 당시 시계에서 매 시간 자동으로 튀어나와 종을 치는 '시간 알림용 인형'이 만들어졌거든요. 이 인형은 사람이 해야 하는 반복적이고 귀찮은 일을 맡아주는 고마운 존재였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생겨났어요. 하루 몇 번씩 교회의 높은 종탑까지 올라가 종을 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던 종지기가 사라지게 된 것이죠.

당시 시계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오늘날로 치면 최첨단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일하는 천재 연구자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시계 기능공들은 18세기에 정교한 자동 기계 인형인 '오토마톤(automaton)'을 제작하기에 이르러요. 오토마톤은 로봇의 기원으로 여겨집니다.

스위스 태생의 시계공이었던 피에르 자케드로(Pierre Jaquet-Droz·1721~1790)는 조각가가 모양을 깎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계적 원리를 토대로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1768년에 착수해 6년 만에 '작가' '화가' '음악가'라고 이름 붙인 세 오토마톤을 완성했어요. 70cm 크기의 이 기계들은 현재 스위스 뇌샤텔(Neuchâtel) 박물관에 있어요. 놀랍게도 2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해요.

'작품3'이 바로 자케드로가 만든 오토마톤 '작가'입니다. 나이는 다섯 살 정도로 보이고, 귀족처럼 실크로 된 금색 바지와 붉은색 벨벳 코트를 입은 남자아이예요. 옷 뒤쪽을 열면 600개의 기계 부품과 120개의 캠(CAM)이 돌아가요.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눈동자를 돌리면서 왼손으로는 종이 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잉크를 찍어가면서 문장을 능숙하게 필기체로 쓴답니다. 몸통에 내장된 원형 자판은 소문자 26개, 대문자 14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돼 있어요. 위에 있는 캠들이 움직이면서 알파벳을 조합해 원하는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알고리즘이 짜여 있습니다. 단순한 장난감이나 수공예품이 아니라 당대 최첨단 과학기술의 성과였답니다.

자케드로가 만든 오토마톤을 본 당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어요. 신기해하면서도, 동시에 언젠가는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을 거예요. 2016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경기에서 알파고가 이겼던 순간 우리가 느낀 기분과 비슷할 겁니다.

기계 문명에 긍정적인 예술가

1920~1930년대는 '기계 문화의 시대'로 불립니다. 그 이유는 기계로 인해 달라질 미래 세계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에요. 이 시기 예술인들의 입장은 둘로 나뉘었어요. 기계가 노예 등을 대신해 일을 해주기 때문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로 기계가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침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이 있었죠. 프랑스의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1881~1955)는 기계로 인해 좋아진 세상을 꿈꾼 화가였습니다.

레제의 그림에서는 기계 부품으로 이뤄진 도시 모습과 로봇처럼 생긴 인물들이 주로 등장해요. 작품1 '엄마와 아이'를 보세요. 두 인물은 얼굴도 로봇처럼 생겼고, 몸통과 팔다리도 로봇처럼 금속판으로 돼 있어요. 기계화된 분위기의 배경 속에서 엄마는 책을, 아이는 꽃송이를 들고 있어요. 기계로 인해 노동에 쪼들리지 않고 어른과 아이 모두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요.

아둔한 인간을 로봇에 비유

오스트리아 출신의 예술가 라울 하우스만(Raoul Hausmann·1886~1971)은 레제와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어요. 그는 나무로 만든 얼굴에 이것저것 붙여 '기계적인 머리'(작품4)를 만들었어요. 이마와 귀에는 눈금자가 달려 있고, 다른 쪽 귀에는 알파벳으로 맞추어야 열리는 자물쇠가 붙어있는가 하면, 모자 대신 계량컵을 얹은 머리는 로봇 같아 보이지만 인간입니다. 판단할 능력이 없는 아둔한 인간을 로봇에 비유하고 있는 거지요. 어쩌다 인간이 로봇처럼 변해버렸다고 한탄하고 있는 작품이지요.

기계와 신인류

'작품2'는 TV 모니터로 만든 로봇이에요. 기술 문화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펼친 백남준(1932~2006)의 작품으로,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프랑스의 쿠베르탱을 기념하여 만들었어요. TV 화면들이 파리 에펠탑처럼 생긴 탑에 붙어 번쩍거리고, 옆구리에는 '정확한 기록'을 의미하는 시계도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가 그려진 우산을 들고 있지요. 올림픽은 각국 운동선수들이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전 세계인의 축제입니다. 로봇 쿠베르탱을 통해 백남준은 새로운 기술 문화를 즐기는 신인류의 축제를 보여준 것이지요.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