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전쟁으로 폐허된 미래의 지구… 인간·동물 함께 의지하며 살아요
콤비(Combi)
소윤경 글·그림 l 출판사 문학동네 l 가격 1만8000원
아주 커다란 도마뱀이 인자한 표정으로 소녀의 등 뒤를 감싸고 있어요. 머리카락을 다듬어주는 도마뱀에게 소녀는 몸을 맡기고 앉아있네요. 그런데 도마뱀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이고, 소녀의 표정에선 반항기가 느껴져요. 그림 아래엔 알쏭달쏭한 글귀가 적혀 있어요. "사춘기에 접어든 수지는 게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게르를 슬프고 두렵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수지의 곁을 지켜 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한 장의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치 장편소설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 전투에서 다리를 잃은 도마뱀 게르는 갓 태어난 인간종인 수지를 분양받아 딸처럼 길러요. 세월은 흘러 사춘기가 된 수지는 장애가 있는 게르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싫대요.
이 이야기의 배경은 아주 먼 미래예요. 인류는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어요. 전쟁 때문에 지구 위의 대부분 생물이 멸종해버렸죠. 메마른 지구 위에 인류는 이제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자원도 없고 먹을 것조차 구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러자 인류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생명체들을 만들기로 해요. 쥐·도마뱀·박쥐·거북이·해파리·달팽이 등 다양한 동물들에게 인간 같은 지능과 감성을 갖도록 했죠. 그때부터 인간과 동물들은 서로 교감하며 의지하는 존재가 됐어요. 책 제목 '콤비'는 두 사람이 짝을 이룬다는 콤비네이션(combination)의 줄인 말이에요. 책은 인간과 동물이 콤비가 되어 함께 살아가게 된 이후의 세상을 표현한 그림책이랍니다.
작가는 작품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해요. "건기가 끝나면 우기가 시작되듯이 전쟁은 반복되었다. 멈추지 않는 포화 속에서 콤비들은 태어나고 죽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생을 함께했고, 죽음을 함께했다."
책에서 세 번째로 등장하는 콤비인 거북이 노아와 인간 지후의 사연은 아주 가슴 아파요. 노아는 지후와 보초를 서던 중 포탄을 맞았어요. 노아가 죽자 지후는 노아의 등딱지를 항상 입고 있습니다.
'콤비'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를 위한 그림책이에요. 아이들은 아이의 시각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성인들은 그들대로 다양한 상상을 즐길 수 있어요. 부모와 아이가 이 책을 함께 읽고 서로에게 감상을 들려주면 깜짝 놀랄 수도 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듣게 될 테니까요. 그만큼 '콤비'는 우리의 상상을 아주 다양한 각도에서 자극하는 그림책이거든요. 전쟁과 죽음 등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잔인한 장면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그림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머나먼 미래에도 우리는 끝없이 희망을 이어가기 때문인가 봐요.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이 서로 차별 없이 공존하고 연대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