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석탄 증기기관 발상지가 '탄소 중립' 선언 성지로
입력 : 2021.11.10 03:30
글래스고
- ▲ ①작업 중인 제임스 와트를 그린 그림. 그는 글래스고대학교 안에서 고장 난 기계를 고쳐주는 일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열효율 높은 증기기관(왼쪽 작은 사진)을 만들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어요. ②‘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 /게티이미지코리아·위키피디아
글래스고는 18세기 이후 철강·화학·섬유·조선 산업이 크게 발달하며 산업혁명을 이끈 도시였어요. 1960년대 중반 이후 중공업이 쇠퇴하면서 침체기를 겪다가, 1980년대 금융·관광 등을 내세운 도시로 탈바꿈했지요. 최근에는 도시 재생 등을 거치며 문화 도시로 알려지고 있답니다. 글래스고는 세계 역사를 바꾼 유명인을 여럿 배출하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산업혁명 이끈 제임스 와트
글래스고 중심에는 영국 국왕 조지 3세(재위 1760~1820) 이름을 딴 '조지 광장'이 있어요. 이곳엔 공학자 제임스 와트(1736~1819) 동상이 있답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이끈 와트는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에요. 그는 고향이 글래스고 서쪽 그리녹이지만, 글래스고에서 꿈을 펼쳤어요.
와트는 어렸을 때부터 선박 기술자이자 상인이었던 아버지 작업장에서 각종 도구 등을 다루며 공학·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지만, 호기심은 왕성했어요. 물이 끓는 주전자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숟가락을 대고 떨어지는 물방울 수를 셌다는 일화도 전해져요.
그는 기계 제작 실력을 키우러 런던에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스코틀랜드에 돌아와 당시 상공업 중심지였던 글래스고에 자리 잡았어요. 그리고 1757년부터 글래스고대학 안에 가게를 차렸어요. 당시 영국에선 길드(상인들의 조합)에서 정식 도제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취직하거나 가게를 차릴 수 없었는데, 대학 안에선 가능했기 때문이지요.
거기에서 와트는 교수와 학생들이 맡기는 고장 난 기계나 도구를 수리하고 새 기계도 만들었어요. 이산화탄소를 발견한 화학자 조셉 블랙(1728~1799) 등 많은 과학자와도 교류했고요.
그는 곧 증기기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증기기관은 증기의 압력으로 실린더 속의 피스톤을 움직여 동력을 얻는 기관이에요. 사실 와트를 증기기관의 발명자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게 아니라 토머스 뉴커먼(1663~1729)이 발명한 증기기관을 개량해 널리 쓰일 수 있게 한 거예요. 뉴커먼의 증기기관은 열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게 문제였어요. 와트는 이를 개량해 석탄을 4분의 1만 들여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증기기관을 만들었고 1769년 특허를 냈어요.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은 광업, 제철 산업, 섬유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줬어요. 공장의 효율을 높여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됐고,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도 이어지며 산업혁명을 이끌었습니다. 과거 석탄으로 대변되는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였던 글래스고에서 250년이 지나 환경 회의가 열리고 여러 나라가 '탄소 중립'을 선언했으니, 그사이 글로벌 환경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
글래스고대학은 1451년 교황 칙서로 설립됐는데 영어권에서 옥스퍼드·케임브리지·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 이어 넷째로 오래된 대학이에요. 화학자 윌리엄 램지 등 노벨상 수상자 7명, 영국 총리 2명을 배출했답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1933년 이 대학에서 직접 강의했고 후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글래스고대가 배출한 인물 중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3~1790)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그는 14세에 글래스고대에 입학해 도덕철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대학으로 옮겨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1751년부터 글래스고대학의 교수가 되어 논리학과 도덕철학을 가르쳤어요. 그는 훗날 글래스고대 교수 재직 시절을 "가장 유익했고 행복했으며 명예로운 시기였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는 1763년 교수 일을 그만두고 유럽을 여행하며 철학자 볼테르, 벤저민 프랭클린 등 당대 지식인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10년간 집필한 끝에 1776년 '국부론'을 출간했죠. 여기서 그는 정부가 민간의 경제활동을 통제하지 말고 자유롭게 놔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개인이 경쟁하며 이익을 추구할 때 오히려 사회가 이롭게 발전한다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이끄는 대로 말이에요. 그는 또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노동 분업'을 제시했어요. 핀 생산 공정을 예로 들었는데, 노동자 1명이 하루에 핀을 20개 만드는데, 공정을 18단계로 나눠 10명이 분업하면 하루에 4만8000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당시 경제학은 학문으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스미스의 국부론은 최초로 '자유방임주의'를 주창한 경제학 저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787년 글래스고대에서 학자의 최고위직인 렉터(대학 명예 총장)에 임명됐어요.
[브레이브 하트 주인공 '윌리엄 월리스']
글래스고에는 6세기쯤 주교 성 뭉고(Saint Mungo)가 교회를 지으면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교회가 13세기 글래스고 대성당으로 발전했어요. 대성당 인근엔 지역 유명 인사들이 묻힌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가 있어요. 이곳엔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연기한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기념비도 있죠. 그는 1297년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의 압제에 맞서 전쟁을 일으킨 인물로 지금도 스코틀랜드 국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에요. 그의 생애 관련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초상화 한 장도 없죠. 영화 '브레이브 하트'도 15세기 소설을 기반으로 했대요. 역사가들은 그가 1270년쯤 글래스고 인근 엘더슬리(Elderslie)에서 태어났고, 글래스고 근처에서 잉글랜드군에 붙잡혀 1305년 런던에서 처형된 것으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