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기억 못하는 행동, 죗값 물어야 할까? 생각에 빠지게 하는 짧은 이야기들

입력 : 2021.11.04 03:30

밸런스 게임

[재밌다, 이 책!] 기억 못하는 행동, 죗값 물어야 할까? 생각에 빠지게 하는 짧은 이야기들
김동식 지음 l 출판사 요다 l 가격 1만3000원

당신은 자신이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아요. 100만원을 선택하면 모든 일을 기억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만약 1000만원을 선택하면 무고한 한 사람이 죽지만 이 선택에 관한 아무 기억도 남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돼요. 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김동식 작가의 초단편 소설집 '밸런스 게임'에 등장하는 장면이에요. 정말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네요.

이번엔 다른 장면이에요. 화려한 리무진 안에서 한 노인에게 이런 제안을 받아요. 하나는 영원히 서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신 100억원을 받는 것, 다른 하나는 영원히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10억원을 받는 거예요.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김동식 작가는 2017년 첫 소설집 '회색 인간'을 발표한 후 올해 3월 나온 '밸런스 게임'까지 총 10권의 소설집을 시리즈로 냈어요. 그는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했다고 해요. 매일 쇳물을 다루면서 머릿속에는 재미있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렸대요.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낮에 떠올렸던 이야기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썼지요. 이 글들이 사람들의 호응을 받으며 책으로 출간까지 하게 됐어요. 그의 단편들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밸런스 게임'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딜레마를 다뤄요. 욕망과 정의, 증오와 용서, 인륜과 생존 등이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망설이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단편 '미워하는 마음'에는 나의 행운과 미운 사람의 불행을 반비례로 결정할 수 있는 카드가 등장해요. 또 '이상한 미용실'에는 꿈속에서 말하기만 해도 현실에 소문이 퍼지는 미용실이 나오죠. 정말 그런 미용실이 있다면 무서울 거예요. 또 '돈 나오는 버튼을 누를 것인가'라는 작품에서는 아이들의 도덕성을 기준으로 돈을 지급하는 복지 시스템이 등장합니다.

이런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왜 정의와 도덕과 법을 지켜야 하는가?' '기억하지 못하는 행위에도 죗값을 물어야 하는가?' '어떠한 처벌이 없어도 법은 지켜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져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는 도덕이나 정의가 어찌 보면 허술한 논리를 발판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분명히 짧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인데 동시에 생각의 바닷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작품들입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