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강철보다 튼튼하고 탄력 좋아… 방탄복·인공 장기 등에 활용
입력 : 2021.11.02 03:30
거미와 거미줄
- ▲ /그래픽=유재일
수억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고 있는 거미는 기분 나쁜 동물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실제론 해충을 제거해주는 이로운 동물이에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사는데, 작년 기준 전 세계에 4만8690종이 있다고 해요. 거미가 이렇게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는 것은 '거미줄'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거미는 곤충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거미가 곤충이라고 생각하는데, 거미는 곤충이 아니에요. 동물 분류상 절지동물 중에서 곤충은 '곤충강(綱)'에 속하는데, 거미는 '거미강(綱)'에 속해요. 생김새도 곤충들과 좀 달라요. 일반적인 곤충들이 날개 두 쌍, 다리 세 쌍에 머리·가슴·배로 구분되는 몸을 가진 반면, 거미는 다리가 네 쌍이고, 머리와 가슴이 합쳐진 머리가슴과 배로 구분되는 몸을 갖고 있어요. 날개도 없어요.
거미 머리에는 먹이를 마취시키는 독이 든 독샘이 있고, 복부에는 거미줄 재료가 되는 액체를 저장하는 '실샘'이 있고, 배 끝 항문 근처엔 거미줄을 뽑아내는 '실젖'이 있어요. 곤충처럼 몸속에는 뼈가 없고 외골격이 있어 겉이 단단한 편이지만, 거미의 외골격은 곤충보다 얇아서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희귀하대요. 그런데 지난 2008년 우리나라 경남 사천의 암석에서 2㎝ 크기의 중생대(약 2억5200만년 전~6600만년 전) 거미 화석이 발견돼 화제가 됐었어요.
날개 없는데 공중에 거미줄 치는 비결은?
암컷 거미는 짝짓기한 다음 알 집을 만들어 100~1300여 개의 알을 낳아요. 봄이 되면 알 집에서 유충이 깨어나고 점차 성체 거미로 성장하지요. 그러곤 모두 뿔뿔이 흩어져 혼자 독립 생활을 해요. 각자 거미줄을 치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 많은 거미가 다 단독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온갖 곳에 수많은 거미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미들은 날개가 없어서 날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높은 곳까지 이동해서 커다란 거미줄을 치는 걸까요?
그 비밀은 바로 거미의 '유사 비행'에 있어요. 유사 비행은 바람에 날아가는 거미줄을 타고 이동하는 걸 말해요. 실제 나는 건 아니지만 비행하는 것처럼 보여서 유사 비행이라고 부르죠. 유사 비행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예를 들면 높은 곳으로 기어 올라가서 실젖 부분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려 실을 길게 뽑아내요. 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 거미는 그 실에 매달려 이동하는 거예요.
특별한 거미줄
거미줄은 거미가 이동할 때뿐 아니라 먹이를 잡는 데도 쓰고, 생활 터전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해요. 거미줄은 피브로인(fibroin)이라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요. 지름은 3~8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로 가늘지만, 잡아당겼을 때 버티는 힘은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몇 배나 강해서 아주 큰 먹이의 무게도 버틸 수 있지요. 거미줄은 실샘 안에선 액체 상태로 있다가 실관을 통해 실젖으로 나오는 동안 단백질 분자 구조가 바뀌면서 물에 녹지 않는 고체 상태 줄로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거미 몸에는 실샘과 실젖이 여러 개 있어서 용도에 따라 각각 다른 성분의 거미줄을 만들어 낼 수 있대요. 먹이를 잡을 때에는 겉에 점성 물질이 붙어 있어 끈끈하고 탄력 있는 거미줄을 사용하고 거미집의 기본 골격은 건조하고 딱딱한 거미줄로 만드는 식이지요.
인공 근육 등 생체 분야에도 활용 가능
이렇게 강하면서도 탄력이 뛰어난 거미줄을 모방해 여러 가지를 만드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요. 거미줄은 단백질이 사슬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와 미국 공동 연구진도 2015년 거미줄을 모방한 인공 섬유를 개발했어요. 연구진은 거미줄을 이루는 단백질 구조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야 튼튼한지 밝혀냈고, 그걸 이용해 실제 인공 거미줄 섬유를 만들어 냈답니다. 이 섬유는 인체에 사용해도 부작용을 덜 일으켜서 인공 장기 등 생체의학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거래요.
68배 무거운 물체 옮기는 '인공 거미줄'
거미는 거미줄에 먹이가 걸리면 그 진동을 감지해 알아챌 수 있대요. 오염 물질이 거미줄에 걸린 것도 알아채고 제거하고요. 서울대 연구진은 거미줄의 이런 특성을 본떠 주변 물체를 감지해 잡을 수 있는 인공 거미줄을 만들었어요. 연구진은 전기 전도성과 신축성이 뛰어난 전도성 섬유를 만들고, 이 섬유로 손바닥 크기 방사형 거미줄 형태를 만들었어요. 이 거미줄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줬더니 정전기가 생겨 주변 물체가 달라붙었어요. 이 거미줄은 또 가까이 접근하는 물체를 감지할 수 있고, 자기보다 68배 무거운 물체를 잡아끄는 데도 성공했어요. 이런 인공 거미줄 기술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2018년 미국의 바이오 기업이 거미줄 제작과 관련된 거미의 유전자를 누에에 집어넣어 누에가 거미줄 특성을 가진 실크를 대량 생산하게 됐어요. 이 인공 거미줄 섬유는 기존 방탄복을 만드는 데 쓰인 합성섬유 '케블라'보다 훨씬 강하면서도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대요. 이 섬유는 방탄복 외에도 타이어, 자동차와 선박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일 수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