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광복 후 36년간 실시… '0시의 이별' 노래도 통금 위반이라며 금지했죠
입력 : 2021.11.02 03:30
통행금지
- ▲ 1972년 4월 1일 경찰의 통금 단속에 걸린 여성들.
통금은 전근대 시대에 대부분 국가에서 벌어졌는데, 국가가 치안상의 이유로 실시한 경우가 많았어요.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때 치안과 화재 예방 등을 위해 실시됐어요. 통금에 대한 최초 기록은 조선 3대 왕 태종 1년(1401년) 5월 20일 자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거기엔 '순작법(巡綽法)을 엄하게 하여 초경 3점(오후 8시쯤)~5경 3점(오전 4시 30분쯤)에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잡아 가두도록 한다'고 쓰여있어요. 순작(巡綽)은 야간에 군사들이 줄지어 호령하며 거리를 다니며 순찰하는 걸 말해요. 일종의 통금법이죠. 조선시대 통금 시간은 조금씩 바뀌다가 성종 때 경국대전이 편찬되면서 2경~5경(오후 10시~오전 4시쯤)으로 정착됐어요.
실록에는 순작법을 어겨 처벌받은 기록도 나와요. 태종 1년 9월 21일 대사헌 이원이 통금 시간을 어겼는데 순라군(통금 위반자를 잡던 군인) 윤종이 이원 대신 이원의 노비를 잡아 가뒀다 금방 풀어줬대요. 결국 공직자로서 법을 어긴 이원과 이원을 잡아 가두지 않은 윤종 둘 다 파직됐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통금은 갑오개혁이 실시되던 1895년 근대화 분위기 속에 폐지됐어요. 그러다 광복 후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치안 유지를 위해 1945년 9월 부활시켰어요.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대체로 자정~새벽 4시 사이 통금이 유지됐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엔 가수 배호의 노래 '0시의 이별'이 통행금지령 위반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자정부터 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는데 이때 헤어진다는 건 통금 위반이라는 것이죠. 단, 크리스마스이브, 부처님오신날, 신정 연휴엔 통금이 해제됐대요. 한국에서 크리스마스이브가 연인들의 날로 여겨지는 것은 이날이 밤늦게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어요.
통금은 국민의 생명 보호와 치안 유지가 목적이었지만,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한다는 비판을 들었어요. 결국 1981년 국회에서 통금해제안이 통과된 후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완전히 해제됐습니다. 긴 시간 이어져 온 통금이 해제된 건 통금을 유지한 채 국제 행사(88년 서울올림픽)를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통금 해제 당일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른 사람들도 있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