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변화무쌍한 계절 묘사… 악보에 14행 짧은 시 붙였어요

입력 : 2021.10.25 03:30

비발디 '사계'

지난 12일 ‘사계 2050’ 기자 간담회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인공지능(AI)이 편곡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2일 ‘사계 2050’ 기자 간담회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인공지능(AI)이 편곡한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사계 2050, 불완전한 사계' 공연이 열렸어요. 기후변화 예측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해 인공지능(AI)이 2050년에 맞게 비발디의 '사계(四季·봄 여름 가을 겨울)'를 편곡한 작품이 무대에 올랐지요. 아쉽게도 인공지능이 그린 2050년 서울의 사계는 그다지 밝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발걸음이 무거운 듯한 템포가 두드러졌지요. 인간들의 활동으로 환경에 나타난 적신호가 음악을 통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어요.

자연환경을 묘사한 클래식 음악은 정말 많아요. 사계절을 다룬 곡만 해도 차이콥스키·글라주노프의 작품 등 여러 곡이 있지요. 그런데 인공지능이 비발디의 '사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비발디의 사계가 계절 변화를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하게 묘사했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모습을 인상적 멜로디로 표현한 걸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비발디의 사계는 작곡한 지 30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클래식 작품 인기투표를 하면 언제나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지요.

짧은 시가 붙은 비발디의 '사계'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예요. 그는 바이올린을 포함해 첼로·바순·만돌린·트럼펫 등 여러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만든 바이올린 협주곡이 200곡 이상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도 네 협주곡 모음인 '사계'가 가장 유명합니다.

'사계'는 '화성과 창의의 시도'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 번호 8에 수록된 협주곡 12곡 중 앞의 4곡입니다. 당시 바로크 시대엔 작품을 구별하기 위해 협주곡에 제목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어요. 이 네 곡에는 봄·여름·가을·겨울 등 사계절 이름을 붙였어요. 또 이 곡들에는 매우 특이하게도 누가 썼는지 모르는 짧은 시(詩) '소네트(sonnet)'가 붙어 있답니다. 시에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 사계절의 자연 풍경과 사람들 모습이 잘 그려져 있는데, 음악 표현이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요. 그래서 비발디가 직접 썼다는 의견도 있어요.

먼저 '봄'은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로 시작해요. 1악장 후반부에 갑작스레 폭풍우가 다가오지만 새들의 지저귐은 계속되죠. 나른한 분위기의 2악장은 양치기가 개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그리고, 이어지는 3악장에선 눈부신 봄날에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는 양치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름'의 1악장은 찌는 듯한 열기를 묘사하는 악상으로 시작해요. 나무와 풀·사람·동물 모두 무더위에 활기를 잃은 모습을 음악으로 나타내지요. 2악장은 이따금 울리는 천둥소리에 놀라 날아가는 파리와 호박벌이 등장하고, 요란한 비와 우박이 내리는 소리를 현악 합주로 묘사한 3악장에선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들이 우박에 상처를 입어 낙담하는 농사꾼 모습이 나옵니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마을 사람들의 즐거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술에 취해 모두 잠이 들고, 2악장에는 이들을 감싸는 온화한 가을 바람이 등장하죠. 3악장은 사냥 장면입니다. 짐승을 쫓는 사냥개 소리와 결국 잡히고 마는 사냥감의 움직임까지, 비발디는 매우 흥미진진한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겨울' 1악장은 살을 에는 듯한 바람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묘사합니다. 2악장은 따뜻한 난로 위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아늑한 느낌의 멜로디로 나타내고, 3악장은 얼음 위를 걸어 다니다 넘어지기도 하지만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과, 세차게 부는 겨울바람을 화려하게 그리며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리히터·피아졸라의 사계

'사계' 는 워낙 인기가 많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편곡이 나왔어요. 바이올린 독주 부분을 플루트나 오보에·리코더로 연주하거나, 록 음악으로 바꿔 전자기타가 연주하는 버전도 있지요.

그중에서도 2012년 발표한 작곡가 막스 리히터(1966~)의 앨범 '비발디의 사계-막스 리히터 재작곡'은 많은 인기를 끌었어요. 영화 '컨택트'(2016) 등 영화 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리히터는 작은 멜로디를 반복해 사용하며 변화를 주는 미니멀리즘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데, '사계'에서도 그 스타일이 잘 드러납니다. 리히터가 직접 무그 신시사이저(전자 악기의 일종)를 연주해 클래식 악기들로만 구성된 비발디의 '사계'에 색다른 맛을 보탰어요. 리히터의 이 곡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영국 드라마 '브리저튼'에도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답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가 작곡한 '항구의 사계'는 비발디 작품과 전혀 분위기가 달라요. 피아졸라는 1965년부터 1970년까지 5년에 걸쳐 여름-가을-겨울-봄 순서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피아졸라의 사계를 들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계절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것은 피아졸라가 살았던 아르헨티나가 우리와는 다른 남반구의 계절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여름'은 나른하면서도 간간이 폭발하는 응축된 에너지와 변화무쌍한 분위기의 악상이 두드러지고, '가을'은 스산한 느낌을 주는 멜로디가 인상적이죠. '겨울'은 우울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뜻함과 포근함이 감도는 악상을 갖고 있고, '봄'은 공격적 느낌의 탱고 리듬이 강렬하게 드러난답니다.

☞소네트(sonnet)

비발디의 사계에는 작자 미상의 '소네트'가 붙어 있어요. 소네트는 14행의 짧은 시예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사랑 시로 크게 유행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선 괴테의 작품이 유명하고, 영국에선 셰익스피어·밀턴·키츠 등의 소네트가 유명합니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소네트를 154편 남겼어요.

영국 화가 월터 크레인이 그린 ‘사계절의 가면극’. 여성과 자연의 모습에서 사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위키피디아
영국 화가 월터 크레인이 그린 ‘사계절의 가면극’. 여성과 자연의 모습에서 사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위키피디아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도 이렇게 다양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위키피디아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도 이렇게 다양한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위키피디아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김연주 기자